“우리 학교도 어학연수가 생겼더라. 한번 가볼까?”
학교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친구 한 놈이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그때 당시 대학생활의 트렌드 중 하나가 바로 어학연수였다.
영어는 무조건 공부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에 전국의 대학생들이 휩싸여 한번쯤은 다녀오는 게 평준화되었고 실로 전공에 따라 취업에도 영향을 주었다. 학비와 체류비용이 들긴 했지만 학점 대체가 가능하여 한 학기를 해외에서 이수할 수 있는 큰 메리트가 우릴 유혹했다. 더군다나 아직 한국을 떠나본 적이 없었기에 설렐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학과에 머물렀다면 영어공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 같지만 관광학과에선 외국어가 필수가 아닌가! 조금 양념이 더해진 자기합리화는 어학연수를 결정하는데 한몫했다. 단기간의 여행이 아닌 반년 가까이를 낯선 이국땅에서 살아가며 영어공부까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눈뜨고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한껏 부푼 마음과 함께 날아간 곳은
필리핀의 네그로스 섬에 있는
바콜로드라는 도시.
필리핀 사람들의 생활만족도가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평온하고 범죄가 적은 교육도시다.
타지에서 처음 보냈던 하루의 느낌은 뭐랄까. 일단 평생 느껴보지 못한 더위와 20년 이상 익숙했던 음식에서 벗어나 필리핀 음식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몸이 거부하여 며칠은 정말 고생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정말 며칠만 고생했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 마냥, 더위도 음식도 일상까지 너무나도 쉽게 익숙해져 버렸다. 그 과정의 중심에 호기심이 없었더라면 익숙해지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평소에도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단 활동적인 걸 좋아해서 집 밖이라도 자주 산책을 하곤 하는데 해외라고 예외는 없었다. 틈만 나면 기숙사 밖으로 나가 싸돌아다녔다.
슈퍼에도 가고,
약국에도 가고,
현지 식당도 가고,
백화점, 수영장, 재래시장, 공원까지
눈에 보이는 건 한번쯤은 다 발도장을 찍었다.
걷다가 지칠 때쯤이면 택시를 타고 기숙사로 복귀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같이 생활하는 현지인처럼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져 있었다.
타지의 일상을 여행하다 어느덧 나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머릿속에 도시의 모든 것이 그려지기 시작했을 때쯤 조금 더 멀리 여행을 가보기로 했다. 지금은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졌지만 현지에 있을 때만 해도 그저 평범한 섬이었던 보홀(Bohol). 아직도 여행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은 휴양지인 시팔라이(Sipalay)는 여행이기에 자유로울 수 있음을 한 층 더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여행지였다.
어학연수를 끝마치며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연수과정에서 어떤 경험이 가장 도움이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한 끝에 돌아온 건,
현지인의 일상을 내 것처럼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라는 대답이었다.
옛 말에
"어학연수 가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놀아?"
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핀잔이 아니다.
오히려 "어학연수 가면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공부해라"
라는 말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현지인의 일상에 자신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외국어도 부쩍 늘어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스파르타식 교육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교육 커리큘럼을 선택하는 걸 개인적으로 선호한다. 만약 외국어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결국은 전자가 후자보다, 삶에 필요한 견문을 넓히기에 도움이 된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했던 바콜로드의 일상.
가끔 그리워 사진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곳.
이 글을 쓰는 오늘은 그때의 그리움을 여행하며 하루를 보낼 것만 같다.
[여행이 직업이 되면]
#1. 나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https://steemit.com/venti/@munhwan/6fdtqr
#2. 관광 학도가 되기로 결심하다.
https://steemit.com/kr/@munhwan/36mmzq
#3. 처음 한국을 떠나
https://steemit.com/kr/@munhwan/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