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래의 인문학 강의[011]: 제1장 역사 ||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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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역사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 그렇다면 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란 무엇인가를 묻는 이유
▷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1 : 현재가 바뀌면 역사도 바뀐다
▷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2 : 소결론에서 끌어낸 세 가지 진리
▶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3 :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항해하는 오디세우스
▷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4 : 카의 블랙유머--고대사 픽션이 부러워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항해하는 오디세우스

세 가지 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역사는 그저 한 개인의 해석일 뿐이라는 위험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고 해서 어떤 해석이나 다 옳다거나 다함께 공감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모습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설득력이 강해 보이는 세 가지 진리가 가진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이분법이라는 관점입니다. 주체와 객체가 완전히 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E. H. 카는 자신의 글쓰기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주체와 객체는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결과임을 강조하면서 역사가와 그 사실들에 대한 첫 번째 결론에 이릅니다.

여기에서 ‘글쓰기 과정’은 ‘생각하는 과정’이나 ‘인식하는 과정’으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제가 글쓰기 강의를 할 때 드는 예가 있습니다. 제자님들에게 글을 써서 보여 달라고 하면 자주 이렇게들 말해요.
“쓰고 보니 원래 생각하고 달라요.”
저는 글을 읽어본 다음에 묻습니다.
“원래 생각은 어떤 것이었는데요?”
“잘 모르겠어요.”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이와 비슷한 많은 과정을 지켜본 제 생각은 ‘글로 쓴 것’이 글쓴이의 생각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글로 쓰지 않은 내용은 머릿속에 거의 남지 않습니다. 써야 생각이 되는 것이지요. 더욱이 진지한 생각을 언제나 쓰여진 것입니다.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은 글을 쓰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지요.

옆으로 좀 샌 것 같지만 여러분이 직접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을 때 사용되는 낱말의 이면을 이해하면 카의 생각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카가 말하는 글쓰는 과정을 짚어보면서 인식의 과정을 이해해볼까요?

어떤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다양한) 자료를 읽어내긴 해야 합니다. 그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어떤 역사적 사실이든 전체 그림 속에서 어디쯤 위치하는지도 감을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동의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이와 깊이는 필요할 테니까요.

예를 들어 지금처럼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글을 쓴다면 이 책과 직접 관련된 책들 가운데 어느 정도는 읽어본 뒤에 글을 써야 합니다.[1] 가능하면 최신 자료까지.

또는 기독교와 관련된 글을 쓰고 싶다면 기본적인 공부는 필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폴 존슨의 『기독교의 역사』는 꼭 읽어둬야 하는 것이지요. 제대로 된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대부분 필독서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 정도를 빠뜨린다면 그 주제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충분하지는 않은 것이지요. 제가 이런 말을 굳이 덧붙이는 이유는 이런 기본적인 필독서로 꼽히는 것도 읽지 않고 매우 진지한 책을 쓰는 이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필요한 자료를 섭렵하는 과정에서 읽기와 쓰기가 완전히 분리되어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료를 읽어가다 보면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 메모하기와 자료 찾기, 읽기가 뒤섞이기 시작합니다. 생각이 방향을 잡기 시작하고 그 방향에 맞는 자료를 뒤지면서 확인하며 나아가게 됩니다. 확인하는 과정에서 방향이 바뀌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어떤 역사적 사실이 있고, 그것을 해석한다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가는 자료와 ‘소통’하면서 해석하게 되고 원래 생각을 확인하거나 바꾸기도 하는 것입니다. “연구하는 동안 사실을 해석하고 선택하고 정돈하면서 무의식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것은 그 일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2]이라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의 끊임없는 대화의 결과”[3]인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경향신문에 조선시대의 책과 독서를 주제로 연재 글[4]을 쓸 때였어요. 저는 ‘개혁 군주 정조’라는 말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조선의 개혁 가능성을 원천봉쇄해 버린 사람이 정조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아주 깁니다. 문체반정의 과정[5]을 다 다뤄야 할 테니까요. 그래서 간단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이런 예를 듭니다.

적어도 백성들 입장에서는 그다지 개혁적이지 않았으리라고 짐작되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정조는 임금으로 즉위한 첫해 원단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한 해 동안 부지런히 노력한 대가가 관청에 바칠 세금을 내기도 부족하니, 풍년이 들어도 아내와 자식들은 배가 고프다고 울부짖고, 흉년이 되면 노약자들은 구덩이에서 죽어간다. 게다가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농사를 장려하는 선정을 보이니 않으니, 가난한 백성들이 울부짖는 모습이 내 눈에 선하다.”(<정조실록> 1777·1·2)

그런데 정조가 죽기 1년 전쯤에 완성된 박지원의 『과농소초課農小抄』를 보면 ‘가난한 백성들이 울부짖는 모습’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박지원은 이 책에서 토지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백성들이 아무리 부지런하고, 농사를 잘 짓는다고 해도 식구들이 굶어죽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여전히 비참한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사실만으로 정조가 개혁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설사 개혁적이었다고 해도 백성들에게 그 개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이처럼 정조가 전혀 개혁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게 된 것은 정조시대의 모든 자료를 다 섭렵한 뒤가 아닙니다. 조선시대 책과 독서에 대한 관심은 저절로 ‘문체반정’이라는 사건을 연구하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자료들을 섭렵하면서 생각의 방향을 잡아나갔으며 그 생각을 부정하게 만드는 자료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정조에 대한 연구가 새로 나오면 웬만큼은 챙겨 봅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제가 내린 결론을 수정하게 만든 것은 없었어요.


이미지 13 :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항해하는 오디세우스의 배.
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365424957239555839/

카는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에 대한 강연에서 마지막쯤에 스킬라와 카리브디스Scylla and Charybdis를 호출합니다. 역사적 사실과 역사가의 관계를 괴물들이 사는 바다에서 조심스럽게 항해하는 불안한 오디세우스에 비유한 것이지요. 스킬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 해협의 험난함을, 카리브디스는 위험한 소용돌이를 의인화한 괴물입니다. 험한 바닷길에서 소용돌이를 헤치고 항해할 때는 순간순간 잘 적응해야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지요. 역사가에게 역사적 사실은 고정불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소용돌이치는 생각의 흐름에 따라 맞추어나가게 되는 어떤 것입니다.[6] 그래서 카는 이런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역사적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이고, 자신의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하다.”[7]

이런 생각은 ‘들어가는 말’에서 본 두 번째 유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설사 잘 아는 것이라고 해도 무엇을 볼 것인가, 하는 인식적 지향을 통해서만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지요.


[1] 『굿바이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 『앙겔루스 노부스이 시선』, 『한국사, 한 걸음 더』, 『역사비평』(계간), 『역사의 역사』, 『만들어진 고대』, 『만들어진 전통』. 우선 생각나는 대로 적었습니다. 이 목록은 더 보충할 겁니다. 참고로 제 서재에는 역사책이 1천 권쯤 있습니다.
[2] pp. 29-30, As he works, both the interpretation and the selection and ordering of facts undergo subtle and perhaps partly unconscious changes, through the reciprocal action of one or the other.
[3] p. 30, it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3212019195&code=960201
[5] 정조의 문체반정에 대해 잘 다룬 ‘일반도서’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필자의 경향신문의 연재글, 『족쇄와 열쇠 - 조선의 책 이야기』(14회~19회)를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강명관의 『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소명출판, 2007)을 보면 좋겠지만 연구논문이라 그런 종류의 글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읽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6272131055&code=960201&s_code=ac196
[6] 이런 비유 역시 상상력을 발휘해야 카의 생각이 얼마나 비장한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를 검색해 보세요. 많은 이미지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미지는 낯선 것들을 익숙한 것으로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7] The historian without his facts is rootless and futile ; the facts without their historian are dead and meaningless.

(C) 강창래,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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