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10. 오직 진짜만이 모든 것을 갖는다. '리얼'이 되기 위해 가짜 '리얼'을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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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누렁이 (9. July. 2017) 독후감 특성상 스포일러가 존재할 수 있으므로 양해바랍니다. 계속 보시려면 스크롤을 내리시면서 천천히 감상해주세요.

[옹고집전]

1.

  영화 ‘리얼’을 보고 왔다. 다른 사람들이 스파이더맨이네, 어쩝네 하고 있을 때 나는 ‘리얼’을 보고 왔다. 워낙 안 좋은 방향으로 유명세를 탄 작품인지라 도리어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도 영화를 찍은 것도, 편집한 것도 전부 사람인데 너무 입소문이 안 좋게 퍼져서 과소평가를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봤다.

  사람이 아니었다.

2.

  이 어처구니없이 못 만든 영화 ‘리얼’에 대한 평가 중에 아주 재미있는 게 있었다.

  (전략) 분열된 자아끼리 싸우는 걸 보고 싶으면 옹고집전을 보는 게 훨씬 낫습니다. (중략) 차라리 이 배우들 데려다가 옹고집전 찍었으면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훨씬 잘 표현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문형웅 기자, <영화를 쪼다> 비장한 엔딩장면에 관객은 박장대소하는 영화 '리얼' 中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30/2017063001388.html)

  아, 「옹고집전」. 진짜 옹고집과 가짜 옹고집의 대결. 승리한 자는 모든 것을 가지고, 패한 자는 모든 것을 잃는 이야기. 최신 영화보다 더 재미있고 알찬 고전문학이라니, 「구운몽」도 그렇고 역시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이미 시대를 앞서가고 계셨다. 

  그런데 「옹고집전」에 대해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만약 「옹고집전」을 동화로만 본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는 이야기다. 동화로 각색된 「옹고집전」에서는 진짜 옹고집을 몰아내고 집을 차지한 가짜 옹고집이, 쌓여있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어 인심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정작 원작에서는 진짜 옹고집이 마을에서 쫓겨나 갖은 고생을 하는 동안에 가짜 옹고집이 무슨 일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저 허수아비로 변할 가짜 자식 여럿 낳았다는 얘기밖에 안 나온다.

  그럼 대체, 그동안 가짜 옹고집은 뭘 했단 말인가.

3.

  미러링(Mirror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는 ‘무의식적 모방 행위’를 일컫는 말인데, 심리학적으로도 쓰인다. 아마 번역한 단어인 ‘거울 기법’이 더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유명 TV 프로그램에서도 나온 적이 있는 이 단어는 심리극(Psychodrama)의 기법 중 하나로, 주인공이 자기 행동을 거울에 비추어 보이듯 관찰할 수 있도록 보조자아가 주인공의 행동을 똑같이 재현해 내는 기법이다. 주인공은 관중석에 앉아서 자신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이는가를 객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자기 행세를 하려들면 기분좋아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자기 행세를 하는 것도 불쾌한데 거기에다 자신의 안 좋은 면만 부각시켜서 흉내 내려고 한다면 당장 멈추라고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독일에도 ‘도플갱어’라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괴물에 대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져오지 않는가. 

 4.

  작중에서 가짜 옹고집은 진짜 옹고집의 행동과 외형을 완벽하게 모방해낸다. 

  완벽한 미러링의 화신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가짜 옹고집의 행적도 진짜 옹고집의 행적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효도는커녕 패륜을 저지르고, 스님을 업신여기고…… 만약 그랬다면 「옹고집전」을 다른 형태로 각색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짜 옹고집이 패륜을 저지르는 모습을 진짜 옹고집이 제지한다든지. 가짜 옹고집의 행태를 몰래 엿보던 진짜 옹고집이 자신의 과거를 뉘우친다든지.

5.

  이런 훌륭한 고전명작이 있건만, 영화 ‘리얼’은 대체 왜 그렇게 됐을까. 어쩌면 김수현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김수현의 커리어를 끝장내버리기 위해 전부 짜고 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면 김수현은 가엾게도, 요새 잠깐 유행했던 단어를 빌려서 이른바 ‘개꿀잼 몰카’의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 침울해하고 있을 김수현의 앞에 감독과 스태프들이 나타나서 PPAP 춤을 추면 완벽하게 마무리된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끝없이 되뇌었다. 

  아. 그냥 「옹고집전」 볼 걸. 

  

p.s. 

  여러모로 유명한 모 사이트에서도 이 ‘미러링’이라는 단어를 신명나게 밀어대는데, 사실은 그저 단어를 오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치들이 말하는 미러링은 제대로 된 미러링이 아니라 모킹(Mock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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