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이런 얘기를 했다.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까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어."
나는 생각해보았다.
나는 과연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은가.
물론 아니다.
행복하지 않았고 자유롭지 않았다.
인생의 의미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려 하지도 않았고
목적지도 모르는 채 누군가가 모는 대로 그저 이유없이 불안하게 달렸다.
그렇다면 인생의 꽃이라는 20대로 돌아가고 싶은가.
20대 때는 나름 재미있게 많이 놀았고 친구도 지금보다 많았고 나름 목표를 가지고 몰입했던 시간도 있었고 무엇보다 지금의 신랑과 불꽃같은 아프지만 열정적인 사랑을 나눴던 말 그대로 내 인생의 꽃 같은 봄날이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노"
지금이 더 좋다.
그때만큼 재밌게 놀지도 못 하고 친구도 그때만큼 없고 큰 목표로 몰입하는 것도 없고 신랑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이 더 좋다.
지금보다 더 젊었던 그때는 이유없이 흔들리고 불안했다.
나이가 들면서 예쁜 봄꽃같은 느낌은 조금 사라졌을지 몰라도 덜 흔들리는 내가, 조금은 더 굳건해진 나무가 된 것 같은 지금이 좋다.
딸아이를 낳았던 그때,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순간이 금방 지나간다는 것을.
그 당시 친구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아기가 커가는 게 너무 아쉬워."
나의 예상대로 아기는 금방 컸고 이제 그때의 모습은 그저 내 기억 속에, 평면 안의 사진 속에 아련히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당시 아기는 나에게 지금 죽어도 좋을만큼의 행복을 선사했고 그 행복은 역시나 내 예상대로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그럼 그 당시로 돌아가고 싶냐고 나에게 또 묻는다면.
안 갈거다.
지금이 더 좋다.
그때처럼 세상에 막 나와 꼬물거리며 나에게 기적을 하나씩 보여주던 강렬한 기쁨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기는 지금도 나에게 하루하루 작은 기적을 보여주고 너무나 강렬하지 않은 지금의 작은 기쁨들이 이제는 더 좋다.
그러고보면 삶이란 공평한지도 모르겠다.
남들보다 덜 행복했고 덜 가졌던 자신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면 최소 그 과거가 너무나 그리워 현재가 불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미친듯이 행복했고 화려했던 시기가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 시기로 인해 그 나머지 인생은 그저 과거를 그리워하며 불만족으로 내내 인생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역시 행복한 인생이다.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미친듯 행복했다면 그것은 나머지 인생이 설령 불만족스럽게 느껴질지라도 그만큼 인생의 절정기를 잘 누렸다는 뜻이니.
나처럼 딱히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를 가진 사람도 그 역시 행복한 인생이다.
앞으로 더 행복할 일만 남았으니.
행복했던 과거만 그리워한 채 현재를 불만족스러워 할 일은 없으니 말이다.
후회없는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램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누군가는 여전히 계속 찾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미 그 방향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후회없는 삶' 이란
아마도
"과거도 좋았지만 지금이 더 좋아."
"미래도 좋을테지만 그래도 지금이 더 좋아."
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왜냐면 우리는 지금 현재에만이 우리의 모든 감각,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그저 우리 기억 속에 있고
미래는 그저 우리 상상 속에 있기에.
우리가 만지고 몸과 마음으로 절절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오직 지금 뿐이기에.
지금.
지금.
우리에게는 오직
'지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