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목표의 중요성

megaspore(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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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나를 빛나게 해주는 사람들이 참 많고
(우리 집에서는 시어머니와 남의 편, 밖에서는 상사)

그들로 인해 나의 인격은 점점 다듬어져만 가고
세상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인가, 내가 옳은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옳은 것인가 고민하게 되는데,

이 고민하는 과정은 그닥 즐겁지는 않지만 그 과정이 나를
더욱 더 깊은 향기를 품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예전에는 나이가 든다는게 두려웠는데 이제는 나이가 점점 들면 들수록
진한 향기가 나는, 하늘과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진, 더욱 더 자유로워지는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넓어질 것 같아서 이제는 나이듬도 그닥 두렵지는 않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이 한 생각이 딱 들었는데 삶을 항상 허무하게 생각했던 나는
(왜냐면 우리는 매일매일 죽음을 향해 달려가니까)
이 생각으로 갑자기 <삶은 언제나 희망찰 수 밖에 없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생각은 바로

'언제나 적은 것일수록 소중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별 것 아닌 일로 슬퍼하고 화내고 고민하는 것도
다 세상 살날이 그래도 아직 많이 남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의 삶이 딱 1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면,
나의 삶이 딱 한달밖에 주어지지 않았다고 누군가 얘기해준다면
우리는 그때부터 삶이 이 일분일초가 귀중하다고 느낄 것이며
우리의 하루는 정말 어떠한 보석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화나게 해도 슬프게 해도
그것에 우리는 신경쓸 여력이 더이상 없으며
우리는 어떠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하루를
기쁨으로만 채우기 위해 그것만 신경쓸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나이듬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나이든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이제 점점 줄어든다는 뜻이며,
그렇다면 우리의 하루하루는 그만큼 더 가치를 띠게 된다는 것이다.

10대의 하루와 70대의 하루가 같을 수는 없다.

이제 조금씩 죽음을 준비하는 나이가 되면
그리고 진짜 나의 삶이 며칠 안 남았다면
그 하루하루는 미치도록 귀중해질 것이며
귀중한 것을 갖고 있는 우리는 그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더욱 더 행복을 느낄 것이다.

지금 삶을 즐기지 못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살만하기 때문이며
아직도 우리의 삶이 어느 정도 많이 남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가끔은 우리 중 누군가를 배신하기도 할 것이다)

<미치도록 소중해질> 우리의 하루를 만들어줄
'우리가 점점 죽음에 다가간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축복이며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언젠가 미치도록 소중해질 하루를
지금부터 소중히 여기면 어떨까.

그런데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긍정적으로 즐겁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어도
가끔은 나의 의사와 맞지 않는 나를 폄하하는 타인 때문에
세상살이가 고단해지기도 한다.

나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세상살이가 워낙 고단하다보니 그 화풀이를
주위 사람에게 하고 그 피해자가 내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상대가 길가다 마주친 사람이라면
'똥 밟았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마인드로 내 발이 더 더러워지기 전에 피하는 게 상책이나
그 나의 자존감이나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상대가 안타깝게도
가족이나 상사인 경우 우리는 삶이 더더욱 고단해진다.

나는 어릴 때는 아버지 때문에 삶이 고단했으며,
커서 결혼하고 나서는 시어머니 때문에 삶이 고단했다.
직장을 들어가고 나서는 상사 때문에 삶이 고단했다.

그들의 말칼은 나를 사정없이 후벼댔고
안 그래도 없는 자존감은 더욱더 바닥으로 짓밟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사람들의 말칼에도
조금은 유연해진 듯 하다.

바로 나의 삶에 어떠한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딱히 어떠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타인의 말에 쉽게 흔들리고 나의 자존감을 타인에게 맡겼으나
이제는 그들이 나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한다 해도 그것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다.

내가 그들을 백프로 알지 못 하듯
그들도 나를 백프로 알 수 없다.

그리하여 그들이 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평가하는 말은
나의 전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요즘 가지고 있는 목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의 마음이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이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기 때문에
그들이 나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해도 그들의 말에 대해 계속 분석하거나
계속 곱씹지 않고 그들의 말을 듣고 나서 생기는 나의 감정 변화를
스스로 지켜본다.

가끔은 정말 나도 분노할 때가 있고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나의 목표는 그들에게 대항하거나 그들에게 나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분노하거나 자존심이 상해하는 나의 마음을 지켜보면서

'나는 왜 저 사람의 이 말에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가. 혹시 나의 과거와 연관이 있는가.'
라는 생각을 곰곰이 해보면서 왜 나는 이런 말에 이토록 예민한지
왜 나는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그 사람의 말을 곱씹는게 아니라 나의 감정에 대해 분석해본다.

그리고 나선 쿨하게 생각한다.

'그건 당신 생각이지.'

이제는 나의 삶의 목표가 다른 이에게 내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이들의 아무 생각없는 공격에도
예전보다는 더욱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지 살펴 보고,
그렇지 않다면 나는 왜 이토록 그의 이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요리조리
스스로 그 원인을 분석해본 다음 할일은 바로 이것이다.

'내 마음을 적절한 방식으로 그에게 표현하기'

나의 감정이 왜 이런지 분석이 대충 끝났으면
평정을 유지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나의 마음을
꼭 '표현해야 한다.'

사람은 표현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동물인것 같다.

이토록 인류가 발전한 것도 다 자신을 표현하다보니
인류사회가 이토록 발전을 했고
우리는 어떠한 식으로든 우리 자신을 표현하길 원한다.

막 분노하면서 그에게 표현한다면 그에게 내 말이 잘 먹힐리 없으나
평정한 마음을 유지하며 내 마음을 표현하면 의외로 상대에게 잘 먹힌다.

[몰입]의 저자 서울대 황농문 교수의 책에서 보면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나도 몰입의 목표가 없었을 때는 정치가 어떻느니 하면서 열변을 토하며
다른 나와는 관계없는 일에 괜히 열을 내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 목표가 생기니 이제 그런 것들은 중요치 않았다."

청소년들이 비행을 하게 되는 원인도
자신이 집중할만한 목표가 없어서 그렇다는 말을 들었고,

우리네 어른들이 괜히 남한테 간섭하고 이러쿵 저러쿵 남한테 상처주기도 하는 것도
내 생각엔 그들 생각엔 그것이 자신을 표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찌보면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이러쿵 저러쿵 쓸데없는데 간섭하며
남한테 상처주는 것이다.

꼭 이러한 목표가 아닐지라도 삶에 자신만의 목표가 생기면
남한테 간섭할 여력도, 남이 나한테 비난한다고
그것에 예민하게 받아들일 에너지조차 아깝다.

우리의 에너지는 온전히 우리가
이 '미치도록 소중해질' 하루를
조금이나마 더 빨리 즐기는데 써야 한다.

나만의 목표,

그게 어떤 것이든

그것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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