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megaspore(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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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강연으로 유명해진 김창옥 교수의 강연 <무엇이 남았나요>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김창옥 왈:

"여러분은 올해 무엇이 남으셨나요?
저는 인생을 돌이켜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것들만 남은 것 같아요. 저는 성악과를 나왔는데 노래를 되게 못 했어요.

그래서 강연을 시작하고 나서 교수님에게 십년을 레슨 받았어요. 유명해지고 나서는 그 시간에 강연하는 것이 더 돈을 벌 수 있었는데 그래도 레슨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돌이켜보니 바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한 레슨이 저에게 남은 것 같아요.

또 하나, 이름이 알려지면서 바빠지고 나니 운동할 시간조차 짬내기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너한테 PT를 받았다가 일이 생겨 그만뒀는데 그게 제일 아쉬워요."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며 포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매번 한해를 보내며 탄식한다. "계획한 거 하나도 못 했네...ㅜㅜ"

새해에는 더 부지런해지기, 어학 공부 시작하기, 운동, 금연 등등 포부는 한아름인데 지나고 보면 왜 나는 여전히 뒹굴거리는 게으름뱅이에 외국인만 만나면 심장이 쪼그라들고 뱃살은 축 쳐져있고 여전히 가족의 등쌀에도 담배를 피러 추운 날 밖을 들락날락 거린다.

왜일까.
나는 정말 변하고 싶었는데..

도대체 우리가 변하지 못 하는 항상 이 만족스럽지 못 한 현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정작 무엇일까,

나도 지금까지 살면서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여자 나이치고는 아주 늦은 첫취업을 하고 (27살) 계속되는 야근과 원치 않는 연이은 회식 술자리에 나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만 갔다..

<두려움에 관하여>편 참고
https://steemit.com/kr/@megaspore/p7wfg

그러던 어느날 헬스장 광고 전단지를 받고 찾아가 청산유수인 직원의 말에 홀딱 넘어가 바로 12개월 할부로 그 비싼 PT를 30회나 끊었는데 그곳에서 아름다운 여트레이너와 함께 엄청난 성취감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아름다운 그녀에게 내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저는 이 시간이 하루의 유일한 낙이에요"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편 참고
https://steemit.com/kr/@megaspore/5zxc53

암튼 야근을 하고 가서 밥 먹고 씻고 자기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 일주일에 주말 딱 한번만 쉬고(근육도 하루는 쉬어줘야 한다는 아름다운 그녀의 말에) 매일 한시간 근력 한시간 유산소 두시간을 운동하고 집에 가서 머리만 대면 자던 그 시절..

그 시절은 나에게는 행복하던 시절로 기억되고 있고 그 피곤했던 시절이 행복으로 추억되는 원인은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지로 운동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나는 두아이의 엄마고 시부모님과 같이 살아서 많은 도움을 받긴 하지만 둘쨰 아이는 이제 겨우 생후 두달이라 쉴 새 없이 안아달라고 울어대고 두살터울인 첫쨰 아이는 나만 보면 안아달라 놀아달라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그런데 나는 요즘 너무 행복하다.
십년전 피곤한 시절이었지만 야근 후 운동하던 그 시절이 행복으로 추억되는 것처럼 지금도 잠이 부족해 피곤하지만 나는 지금이 나의 전성기, 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행복할지도 모르는 순간인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바쁜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지로 글쓰기를 계속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가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하지 않으면 당장 굶어 죽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온전히 나의 의지로 오늘도 글을 쓴다.

이 순간 나는 가슴이 벅차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알고보면 '그래서' 인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바쁘고 피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과 글쓰기를 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바쁘고 피곤했기 떄문에, 그 일상에서 낙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삶의 활력을 얻기 위해 운동과 글쓰기를 했던 것이다. 나는 그 활력으로 다시금 나의 바쁘고 피곤한 '낙이 없는'생활을 더 활기차게 잘 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래서>

긴 인생을 살진 않았지만 어릴 때는 나름 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더니 이렇게 쥐구멍에도 볕뜰 날이 오게 되었다.

하지만 알고보면 내가 쥐구멍에서 살았기에, '그래서' 역설적으로 나는 필사적으로 희망을 찾아 헤맸다. 나의 존재의 가치를 찾아 헤맸다. 행복을 찾을 수 없었기에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다.

인생을 살다보니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다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인생이 가져다 주는 이 쓰디 쓴 좌절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 나갈 때 그 곳에서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이 좌절이 있기에, '그래서' 좌절을 벗어나려는, 나만의 행복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한다. 우리가 마냥 행복했다면 우리는 행복을 찾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 행복하기에 이제는 더 행복해지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불행을 맛 본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의 맛을 안다.

인간은 비교의 동물이다.
불행해본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기에 그에게 현재는 언제나 축복이다. 과거에 비해 언제나 행복하니까.

오늘 좌절과 불행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나는 불행을 느끼기에
'그래서' 나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꼭 그럴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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