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택배를 자주 시키는데
아기가 밤낮이 바껴 택배기사 아저씨가 오셨을 때
그제서야 벨 소리 듣고 부랴부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택배 기사 아저씨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곳을 돌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터라 택배기사 아저씨의 짜증섞인 말투를 인터폰에서 들을 땐 마음이 조급해지며
돌아가시는 택배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나의 "감사합니다"가 진짜 감사의 의미만 담고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말 속엔 진짜 감사의 의미보다는 택배아저씨의 짜증을 그나마 덜 받기 위해서라는걸. 한마디로 말하면 욕 얻어먹기 싫어서 나는 "감사합니다"로 날 포장하는 것이다.
오프리 윈프리의 "내가 말할 수 있는 것들"이란 책에서 보면 이런 말이 나오는데
바로 "의도의 법칙"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의도"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겉으론 똑같은 선의의 행동이었어도
한쪽은 마음이 "다른 사람한테 나의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라는 마음과 한쪽은 "그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해서" 라는 다른 의도를 가졌을 때 내가 마음 속으로 가진 의도대로 상대방에게도 그렇게 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좋은 선의의 행동을 많이 했어도
그 의도가 욕을 먹고 싶지 않아서라든가 그런 의도에서 나왔다면 그 의도에 맞게 정말 욕만 안 먹는 수준으로 그렇게만 나의 선의의 행동은 끝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도 그렇게 전달되고 나의 의도는 성공한 것이다.
우리는 평소 행동할 때는 좋은 행동을 하려고 신중히 선택하지만 행동에 대한 내 의도는 신중히 생각해 보지 않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앞으로는 행동을 할 때 나는 어떤 의도에서 이런 행동과 말을 하는가 한번쯤 살펴보고 올바른 의도에서 나온 행동을 하면 상대방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그 의도에 맞는 올바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남발하지 않으려 한다. 예전에는 이런 말을 남발했다. 진짜 감사하지도 죄송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말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기 위해서 일것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으로 비춰졌을지는 모르겠으나 솔직하지 못했던 나는 이상하게도 맘이 찝찝했다.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진짜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진짜 감사할때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진짜 죄송할때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려 한다.
조금 더 솔직해지려 한다.
"진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는 사람이 아니라.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그리 전전긍긍하며 살았을까.
무엇을 위해서?
내 소중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두 가지가 있다.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말아라.
그럴 필요가 없어."
"다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고 욕 먹어도 괜찮고
쉬어가도 괜찮다고.
그저 너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것만 잊지말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건 내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너무나 소중하다.
다 괜찮다.
너무 심각하게만 살지 말자.
바보같아도 한번 바보처럼 헤 웃어보자.
그 곳에서 지금까지 찾지 못했던
그것을 찾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행복,
아마 그것은
우리 바로 옆에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