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접종

megaspore(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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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하는데 귀에 물이 들어갔다.

음.. 아무리 귀를 확! (손을 귀에 대며) 하고 이쪽 저쪽으로 기울여 보았지만 여전히 귀는 멍..

시간이 지나면 언제나 그랬듯이 자연스레 뜨~뜻한 물이 좔..하고 나오려니 기대했지만 이놈의 물은 며칠이 지나도 나오질 않았고 나는 한쪽 귀로만 답답하게 세상을 느꼈다.

참다 참다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느낀 나는 이비인후과에 가서 이 주인보다 더 멍한 귀를 해결하기로 했다.

“네.. 예약 좀 하려구요.. 그 시간 좋아요.. 네.. 알겠습니다..”

홀몸이 아니었기에 나름 어설픈 보디가드(남편)를 대동하고 병원을 찾았는데 ..

(헝클러진 머릿결의 매력적인) 이비인후과 샘 왈:

“어떻게 오셨죠?” (사실은 중국어~쓰야?!)

배 심하게 나온 아줌마(메가) 왈:

“귀에 물이 들어갔는데 안 나와서요.. 근데요.. 제가 홀몸이 아니라 약은 못 먹어요..(쓰잘데기 없는 말 주절이 주절이..)”

샘 왈: (쓸데없는 말 재빠른 스킵 후)

“어디 한번 봅시다. ”

따땃한 물이 출렁이는, 주인보다 더 멍한 귀를 슬쩍 들여다 본 샘이 나를 의미심장하게 보며 하신 한마디는..

“귀지네요.”

.....“귀지네요.”

...........“귀지네요.”

헐……

내 배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는 보디가드까지 대동해 갖고 왔는데 뭐라고라?!

별처럼 반짝이는 집게로 백년 묵은 산삼을 캐내는 장인의 능숙한 손길이 지나간 후 나는 세상을 다시 얻은 듯한 상쾌함을 느꼈으며 그제서야 나는 앞에 있는 샘의 말씀이 고음질로 또렷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보디가드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마디 던졌다.

“와.. 엄청 크다..”

휴……

귀 자주 파는 게 안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 들은 후 의식적으로 귀를 안 파기 시작한 것이 이러한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혼자 올걸…망했어~)

암튼 그 이후로 나는 하이 퀄리티 베스트 음질로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원래 나에게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다시 얻은 행복감에 몸서리(?)를 치며 황홀해 했다..(옆에서 비웃고 있는 보디가드만 아니라면 만사 오케이..)

매력적인 이비인후과 샘 말씀으로는 귀지는 귀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안 판게 잘 한일이며 귀지가 심하게(ㅜㅜ)많아진 경우는 이렇게 병원에 와서 안전하게 빼는 게 좋다고 하셨다.(^^ 나 지저분한 여자 아님. 정석대로 한 거임.)

엄청난 산삼 같은 귀지를 보며 든 생각이 있다.

‘아.. 한때는(백년 정도) 나를 보호해줬던 귀지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니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구나.. 나를 가뒀구나..나는 그저 나를 보호하려고 했을 뿐인데 그게 심해지니 내가 나를 답답한 감옥에 가뒀구나..’

나는 아버지 덕분에 평범치는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고 그 시절의 마음의 괴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내 주위에 보이지 않는 유리막을 쳤다.

누군가 다가와도 항상 마음의 거리를 두고 유리막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 유리막에 부딪힌 사람들은 결국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아 나를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고 나는 이것이 나를 보호해주는 유일한 길이라며 계속 그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나를 보호해 주었다.

나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을 처음부터 차단함으로써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했고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많았던 나는 더이상의 상처를 나에게 허용하지 않았기에 그 속에서 예전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를 오랜 세월동안 보호해주던 나의 귀지는 이제 내가 세상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게 만들었고 나는 그로써 세상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지 못 하게 되었다..

나를 상처로부터 보호해줬던 나의 유리막..
나를 어느샌가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켰던, 그래서 내가 나를 외롭게 만들었던 나의 유리막..

처음에는 그것이 나를 보호해줬지만 그것이 점차 심해지자 그것은 나를 가뒀다.

우리가 이 넓은 세상에 태어난 것은 홀로 감옥에 갇혀 상처없이 안전하게 생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넓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이 넓은 세상을 마음껏 경험하고 가끔은 깨지고 피를 흘릴지라도 다시금 반창고 붙이고 일어나 또 다시 벅찬 세상을 경험하기 위함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점점 더 커진 내가 되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쓰라리고 짜릿한 극복의 과정들은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예방접종이 심각한 병에 진짜 걸리기 전에 미리 그 균을 조금 넣어 그 균에 대한 면역력이 형성되게 하는 원리인 것처럼 우리의 이 넘어져 까지고 깨지고 가끔은 수술까지 필요했던 아픈 과정들은 우리가 더 심각한 병에 걸려 죽지 않게 하기 위한 예방접종이었다.

아기를 예방접종 맞히고 나면 대부분 열이 나기에 해열제를 타오는데 우리도 살면서 상처라는 예방접종을 맞았으니 해열제를 타오면 된다. 열이 난다고 죽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해열제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의, 아파본 사람들의 진심 어린 격려이다.

그 천하무적 해열제만 있으면 우리는 이제 예방접종이 두렵지 않다. 아기가 태어난 후 몇년에 걸쳐 수십종의 예방접종을 맞고 열이 났듯이 우리도 태어난 이상 오랜 세월에 걸쳐 셀수없이 많은 예방접종을 맞고 열이 나야 한다.

괜찮다.
열이 나서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다. 열이 펄펄 나 다른 합병증이 오기 전에 따뜻한 마음씨, 공감이라는 해열제를 먹으면 된다.

여기에는 값싸고 질 좋은 해열제가 여러 종류로 진열되어 있다. 입맛에 맞게, 취향에 맞게 믿고 먹는 해열제 브랜드를 선택 후 더이상 열 나는 것을 두려워 말자.

상처는 우리를 더 건강하게 잘 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점점 더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며 두려워하지 않게 된 우리는 이제서야 꿈꿔왔던 세상이 주는 모든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너무 많은 사람들은 당분간 자발적으로 유리막 속에서 유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상처가 좀 더 아물길 기다려도 된다.

지난 상처가 아물지 않아 너무 쓰라린데 밖으로 나와 또 부딪혀 깨지면 이제 수술로도 치료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하자.

유리막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상처가 아물면 나는 이제 여기서 나가야 함을.

유리막 안에서는 나는 세상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없음을..

믿고 먹는 해열제를 잘 선택 후 용감하게 예방접종을 맞자.

면역력이 생긴 우리는 세상을 맘껏 탐험해도 이제 작은 일로 죽지 않는다.

나를 오랜 세월 보호해줬던,
이젠 감옥이 되어버린 나의 유리막.

언젠간 나와야 한다.

<배가 만들어진 이유는 단 한가지,

‘항해’ 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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