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의 숲'을 보고난 뒤 ... (feat. 덩케르크)

marginshort(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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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margin short 입니다.

지난 일요일, 16부작으로 구성된 드라마 '비밀의 숲'이 대장정을 마쳤습니다.


<출처: tvn 비밀의 숲 공식홈페이지>

전 검사물이나 수사물을 되게 좋아합니다. 그런데 뭐 검사외전이나 보안관, 베테랑 같은 뻔하디 뻔한 감동 검사물, 수사물이 아니라 아주 잘짜여진데다 현실이 쓰라릴정도로 잘 반영된 '내부자들' 같은 그런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충족시켜주는데다가 제가 남자배우중 가장 좋아하는 조승우씨가 '내부자들'과 마찬가지로 검사로 등장하는 드라마가 나왔습니다. 그게 바로 이 '비밀의 숲'이었습니다. 이걸 보고 정말 많은 것들을 느끼고, 공감하였는데 이 중 몇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 현실은 대다수의 보통사람은 그래도 안전할거란 심리적 마지노선마저 붕괴된 후다.
사회 해체의 단계다.

19년, 검사로서 19년을 이 붕괴의 공황이 바로 내 앞에서 무섭게 커가는 걸 지켜만 봤다.
설탕물 밖에 먹은 게 없다는 할머니가 내 앞에 끌려온 적이 있다.
고물을 팔아만든 3천원이 전 재산인 사람을 절도죄로 구속한 날도 있다.
낮엔 그들을 구속하고 밤엔 밀실에 갔다. 그곳엔 말 몇 마디로 수천억을 빨아드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난 그들이 법망에 걸리지 않게 지켜봤다.
그들을 지켜보지 않을땐 정권마다 던져주는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받아적고 이행했다.

우리 사회가 적당히 오염됐다면 난 외면했을 것이다. 모른척 할 정도로만 썩었다면 내 가진걸 누리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 몸에서 삐걱소리가 난다. 더 이상 오래묵은 책처럼 먼지만 먹고 있을순없다.

(생략 )

부정부패가 해악의 단계를 넘어 사람을 죽이고 있다. 기본이 수십, 수백의 목숨이다.
처음부터 칼을 뺏어야 했다. 첫 시작부터.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조차 칼을 들지 않으면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다.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 시키는 건 시간도 아니요, 돈도 아니다. 파괴된 시스템을 복구 시키는 건 사람의 피. 수많은 사람의 피.

역사가 증명해준다고 하고 싶지만 피의 제물은 현재 진행형이다. 바꿔야 한다. 내가 할수 있는 무엇이든 찾아 판을 뒤엎어야 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이미 치유시기를 놓쳤다.
더 이상 침묵해선 안된다. 누군가 날 대신해 오물을 치워줄것이라 기다려선 안된다.
기다리고 침묵하면 온사방이 곧 발하나 디딜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이제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르키고, 장막을 치워 비밀을 드러내야 한다. 나의 이것이 시작이길 바란다.

-'비밀의 숲' 중 이창준 검사의 유언편지-



이 장면은 최종화에서 이창준 검사의 마지막 편지의 내용임과 동시에 제가 16부작을 통틀어 가장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하는 대목의 내래이션입니다.

<출처: tvn 비밀의 숲 공식홈페이지, 이창준 검사>

우리는 대부분 위의 말처럼 '대다수의 보통사람은 그래도 안전할 거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위의 내래이션에선 그 심리적 마지노선이 붕괴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보통사람은 아직 저런 심리적 마지노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저 심리적 마지노선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붕괴되지 않은 이유는 아마 직접 저 위에 예시된 '설탕물밖에 먹은게 없다는 할머니'가 되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 사회적 약자를 편들어준다거나 위법한 행위를 한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의 삶속으로 파고들길 주저하거나 귀찮아하고 위법한 자들을 손가락질 하고 잘못됐다고 소리치길 두려워합니다.

대중의 힘을 빌어 광장으로 나오는 것은 손쉽게하지만, 1:1로 토론을 한다거나 당장 다같이 모인 그 광장에서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을 지적하거나 처벌해달라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귀찮기 때문입니다.

광장에 나와 소리치는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행동만 놓고 보자면 월드컵때의 응원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토론이나 광장의 불법자들을 고발하는 일은 귀찮은 일입니다. 시간이 들고 갈등을 빚어야하고 논리를 생각해야하는 힘들고 머리쓰고 시간써야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안합니다. 남들이 해주길 바랍니다.

그러다가 이따금씩 제 손을 더럽히길 주저않는 사람들이 나타나 길을 한번씩 치워주는 겁니다. 그럼 길은 잠시 깨끗해집니다.

하지만 내래이션에도 나왔듯, 그런식으로 기다리고 침묵하면 돌아오는것은 발디딜곳 하나 없는 오물밭 뿐이겠지요.


전 예전에 밝혔던 제 과거의 일, 지난 탄핵정국, 스팀잇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휴가간 보며 느꼈던 이런 여러가지 상황들을 본 후에 이 마지막화의 내래이션을 보았기에, 저 말들이 속속들이 가슴에 날아들어 꽂혔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는법을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것을 소리치는데에 주저하는 민족은 악취나는 사회속에 점점 삐걱대다 사회해체의 수순을 밟게 되는것이죠. 대부분의 공산주의국가가 표현의 자유를 빼았기고 끝없는 검열속에 부패하고 부패하다 붕괴된 것처럼 말입니다.

북한 사회가 망해가는 것도, 구소련이 망한것도 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억압하는 데에서부터 그 패망이 시작된 것입니다.

조선이 패망한 것도 충신의 목소리를 가차없이 짓밟고 무시해버린 선대 왕들의 과오와 그 왕들의 귀를 막은 간신들의 속삭임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백성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글자를 못배우게 만들고, 한글을 배워도 책을 읽지못하게 만드는 그런 입막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의 우리사회는 조선이나 공산주의 사회처럼 누군가 입막음 하는 이들도 없습니다. 그냥 스스로가 그러지 않을 뿐입니다.

사회변혁에 대한 갈증은 매우 크지만, 또다른 영웅이 나타나 변혁시켜줄거란 막연한 믿음. 언젠가 좋아질거란 안개속의 희망만을 가진체 비이성적 낙관주의자가 되어갈 뿐입니다.

요즘 '덩케르크' 라는 영화가 유행입니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그들의 용감함, 의지력 등에 찬사를 보냅니다. 영화 평들은 영웅물도, 애국심을 강요치도 않는다고 말하지만 결국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영웅들의 이야기, 애국심을 은은히 느끼도록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애초에 저런 평들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성공적으로 애국심을 강요했다고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본 제 관점은 oldstone@oldstone 님의 '영화 덩케르크를 보고' 와 매우 유사합니다.)


<출처: 네이버영화, 덩케르크>

아무튼 이 영화를 보고나면 저런 반응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 매번 이런 영화가 나올때마다 저런 반응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런 찬사를 보내는 와중에도 변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실겁니다. 그냥 집에 돌아와 sns 에 찬사를 쏟아낸뒤 , 다시 tv를 틀어 먹방을 볼 뿐입니다. 날카로운 사회 비판에 대한 생각은 잠시 미뤄둔체.. 아니, 아마 영영 미뤄둘지도 모른체..

어차피 이렇게 찬사를 보내고 명작이라며 평점 8.5의 쾌거를 이룬 덩케르크는 얼마 후 기억에서 잊혀졌다가 설 특선때나 다시 보는 그런 영화가 되겠지요.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들이 그랬듯.

마치 야근할때 피로감을 박카스로 잠시 미뤄두는 것처럼, 뭔가 정의로워지고 싶거나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질때 한번씩 '정의로움을 회복시키는' 박카스의 대용으로 보는 영화가 될 뿐입니다.

아마 우리사회 구성원들은 끝끝내 행동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간만에 정말 수작 드라마를 만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느낀점도 많고 배우도 좋고 내용도 좋고... DVD로 나온다면 다 사둘 것이고 안나온다면 전편을 다운받아 블루레이로 구워놔야겠습니다.

휴가때 같이 본 덩케르크도 다른 의미에서 좋았습니다. 덩케르크란 영화도 재미있었는데 더 값졌던 것은 바로 위의 저런 이중성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위해 버둥거리는 사람들의 사투를 보며 감동받고 눈물짓지만, 본인들은 그런 버둥거림조차 하지 않으려는, 해본적도 없는 이중성.

아무튼 두 작품 모두 잘보았습니다. 요즘 볼만한 것들이 많아 아주 휴가철 느낌이 제대로 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드라마 '비밀의 숲'을 보고난 뒤 ... (feat. 덩케르크)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