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 단상

mara88(36)
Published in
#ko-kr
Words
294
Reading
2 min
Listen
Play
9y
  1. 가는 겨울 등 떠미는 봄비 오신다. 떠날 사람은 미련없이 떠나라. 앉은 자리 꽃자리라고 퍼질러 앉아 있다가는 풀 한 포기 구경 못 하고 궁뎅이에 쑥물만 들 게다.

  2. 아침 지하철에서 옆자리 아가씨가 꾸벅꾸벅 졸더니 내 어깨로 풀썩 넘어진다. 아뿔싸 싶어 벌떡 일어나 출입문에 기댔다. 멀리서 아줌마 한 명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도둑이 제 발 저린거냐고 묻지 마라. 아니 뗀 굴뚝에도 연기 나는 시대더라.

  3. 차제에 옛날 이야기 하나 하자면, 스물한두살 때였나 널널한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아가씨가 왜 만지냐면서 소리를 질렀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리고 있었다. 하늘에 맹세코 아무 일도 없었다. 옷깃 하나 스치지도 않았다. 황당해 왜 그러냐고 뜨덤뜨덤 물었더니 독기 어린 표정으로 쏘아만 보더니 마침 열린 문으로 내려버리더라. 남은 나만 졸지에 치한이 되어 승객들의 눈살을 오롯이 받아야 했다. 꿈이라도 절대 꾸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4. 미투가 정치적 공작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는 과한 생각이다. 하지만 쳐다만 봐도 상대가 기분 나쁘면 성희롱이 될 수도 있는 세상에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니 폭로에만 의존하지 말고 사실과 시비를 정확히 가린 후에 단죄할 건 단죄하고 벌할 건 벌하자. 한 사람 죽이기는 쉬워도 살리기는 겨울에 꽃 피우기만큼 어렵다. 시샘이나 질투가 거짓말을 낳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았다.

  5. 이것은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의 문제다. 남녀든, 남자와 남자든, 여자와 여자든, 부부든, 연출가와 배우든, 교수와 학생이든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서양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어린아이 머리 쓰다듬는 것도 금기라고 들었다. 관습이라면 폐기하고 습관이라면 고쳐야 한다. 도를 넘어 추행이나 폭행이라면 그에 상응한 벌을 받아야 한다.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범법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무고죄도 성립한다.

  6.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하는 최근의 분위기는 마치 초등학교 시절 누구 샤프 훔친 사람 눈 감고 손 들어보라는 학급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훔치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리던 그때의 기억이 스물스물 떠올라서다. 싸우다 헤어진 옛 애인의 불콰한 얼굴이 떠올라서다. 그녀를 만지던 내 손이 갑자기 역겨워져서다.

  7. 가는 겨울 등 떠미는 봄비 오신다. 뭐라 부르든 시대는 또 하나의 변곡점을 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