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혹은 대다수의 현대인들에게 ‘혼밥’, ‘혼술’과 같은 용어는 낯설지 않다.
‘혼밥’은 혼자 밥을 먹는다, ‘혼술’은 혼자 술을 마신다라는 의미이다. 즉 예전 같으면 ‘함께’했던 일들을 ‘혼자’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혼술’은 성인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혼밥’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도 유행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는 치열한 공부 경쟁은 자연스레 아이들을 ‘혼자’가 익숙하게 하도록 만든다.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확보하고 나머지 시간은 학원이나 과외 수업에 투자를 한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저녁시간에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같은 가볍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들고 학원 버스에 오르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따라서 대학생이 된 후에도 1학년 때부터 취업준비나 자기계발 등을 하며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데 익숙한 것이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 후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 몰두하며 사내 상사나 선후배와 동료 사이는 공적인 관계로 선을 긋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가 된 것이 직장인의 보편적인 문화 중의 하나이다.
다시말해 최대한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고 다른 사람들과 엮여서 머리아픈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현대인들에게 강하게 나타나며 갈수록 이러한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들은 현대사회에서 심화되는 개인주의나 경쟁, 1인미디어의 발달 등을 주요원인으로 꼽는다. 이러한 사회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현대인은 없다. 따라서 함께 있어도 늘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현대인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외로움과 자유로움 사이에서 둥둥 떠다니며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마음의 위로를 얻고 싶어지는 순간이 절실하게 찾아올 때가 있다. 이럴 때 “아, 오늘도 잘 외로웠다”라고 이야기하는 소심하고 따뜻한 선인장의 이야기가 담긴 <그래도 좋은 날(글&그림 : JUNO, 콜라보, 2017)>을 읽어보면 어떨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아마도 ‘나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구나’라는 안도감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쓴 익명의 작가 JUNO(주노)는 고독하고 공허한 감정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디자인 회사를 다니던 중 퇴근 후 집에서 그리던 그림이 SNS상에서 공감과 응원을 얻어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고 한다. ‘고독한 선인장’과 ‘무표정한 사람’을 주로 그리고 있는데 이러한 캐릭터들은 작가와 별개인 동시에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독자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도 마음의 위로를 얻는 중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유명한 전업 작가의 노련미가 느껴지는 책보다 때로는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 아마추어 작가의 책이 가슴을 파고들 때가 있다. <그래도 좋은 날>은 아마추어 일러스트레이터가 만든 책이라는 점에서 독자들과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전문 작가보다 가까운 듯한 인상을 준다. 요즘 출판계에는 몇몇 유명한 작가들보다 JUNO(주노)와 같이 젊은 아마추어 작가들의 책이 의외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책이라는 매체가 주는 이점 중의 하나로 ‘지식 제공’의 측면이 있으나 ‘공감과 소통’의 의미에서도 책의 역할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아마추어 작가들의 등장은 ‘공감과 소통’이 결핍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보도록 하겠다. 이 책에는 총 4개의 캐릭터가 등장하며 이들의 이름은 인장이, 핑크캣, 매기, 체리 형제이다. 인장이는 고독하고 소심한 선인장이며 성실하고 둥글둥글한 성격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배려한다. 그러나 여리고 상처도 잘 받는 편이다. 비록 일은 고되고 사랑이 고파도, 밋밋한 일상 속에서 소소한 기쁨을 찾아낼 줄 아는 긍정주의자이기도 하다. 핑크캣은 핑크색 털의 앙증맞은 고양이다. 어려서부터 작은 몸집 때문에 형제들에게 치이며 자라 강인한 내면을 지니게 되었다. 히어로 놀이를 좋아하고 에너지가 넘칠 때면 흥이 오르며 인장이에게 힘이 되어 주는 든든한 존재이다. 다음으로 매기는 카사노바를 꿈꾸는 갈매기이다. 폼생폼사에, 단순하고 거침없는 성격을 갖고 있으며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에 이성에게 잘 들이대고, 또 잘 차이는 취업준비생이다. 체리 형제는 불금하면 떠오르는 쌍둥이 형제다. 그들은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형 체제는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내는 반면, 동생 리리는 한없이 느긋하다. 둘은 늘 티격태격하면서도 같이 붙어 있어야만 완전체가 된다. 맨 처음 소개한 인장이(선인장)가 중심이 되어 펼쳐나가는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책 전체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의 이야기들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장인, 취업 준비생의 평범한 일상이다. 특별하거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라기보다는 누구나 쓸 수 있는 한 편의 일기와 같은 밋밋함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책의 특별한 점이다.
인장이는 ‘혼밥’에 익숙하다. 이 책의 19페이지에는 ‘혼밥 행성’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발견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든든해진다고 인장이는 고백한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인장이는 친근한 눈빛을 건네거나 인사를 주고받지 않는 건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마치 각자의 궤도를 돌다 마주친 행성들이 반갑다고 멈춰 서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혼밥’에 이어 83쪽에 등장하는 ‘비생산적인 시간’이라는 에피소드도 많은 현대인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장이는 이 에피소드에서 앉아있기도 버거울 정도로 모든 게 귀찮은 날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저 가만히 숨만 쉬면서 누워 있고 싶은 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날은 더 오랫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는데 유난히 하루가 짧다. 누군가에게는 시간 낭비로 보이겠지만 인장이에게는 그런 날이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충전의 시간이며 포기할 수 없는 날이기도 하다. ‘혼자 쉬는 날’ 혹은 ‘혼자 충전할 수 있는 날’ 역시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하루라는 점 때문에 인장이의 에피소드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의 이야기가 정말 ‘그의 이야기’가 아닌 마치 ‘우리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된다. 따라서 비록 현대인들의 하루하루는 고달프고 힘겹지만 버거운 하루 끝에서 이 책을 만나 위로를 얻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