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다음엔 제주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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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실시간 시청률 조사회사 ATAM)

오전 내내 TV 앞에 앉아 있었다. 눈을 떼기 힘들어 아예 점심까지 먹고 출근 했다. 그리고 출근하자마자 스팀잇을 켰다. 일을 해야하지만.. 오늘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참 감회가 새롭다. 실향민들 앞에서, 이산가족 앞에서, 그리고 전후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세대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실례가 되겠지만, 짧은 시간 살아오면서 눈으로 지켜보고, 겪었던 역사의 무게도 그리 작진 않았다.

북과 관련한 나의 첫 기억은 96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강릉에 무장공비가 침투했던 일이 있었다. 당시 우리 군과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공비들은 모두 사살되었다.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친척 형(나이 차이가 많은)이 당시 그곳에서 군인으로 작전 중이었고, 면회를 간 기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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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강원일보)

그 다음 기억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다. 당시 아침 생중계로 대통령이 평양 공항에 내리는 장면을 보면서, 통일을 하는구나 생각 했었다. 학교에 가려고 책가방을 멘 채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이후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만 같던 상황은 격변속에 요동치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동안의 노력들이 모두 물거품이라 칭해지며, 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간 것만 같던 시기를 견뎌내야 했다.

나는 2010년 군에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을 마주했다. 당시 한달 이상 전투복을 입고, 총을 껴안고 잤었다. 졸다가 간부가 총을 가져가 혼났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끝난 줄만 알았다.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고, 압박하고, 굴복시켜서 무릎 꿇게 하는 것이 유일한 답인 줄 알았다. 상대가 핵을 만들면, 우리도 핵을 놓으면 평화가 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답이 아님을 2018년의 봄이 증명해주고 있다.

그제 체벌이란 글에서 나는 폭력이 우리를 굴복시키려 하지만, 맞으면 맞을 수록 더 큰 반감만 가져온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결과론적으로, 우리의 2000년 첫 정상회담과 소 떼 방북, 각종 지원 사업은 결코 부정적 사업이 아니었다.

작은 노력들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다. 진실은 시간이 필요한 가보다.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사건을 평가한다. 제발, 부디 이번 회담이 이전의 노력들을 보상받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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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공감신문, Korea.net on flickr)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남북정상회담이 내년에 또 있었으면 좋겠다. 그 후년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어디가 좋을까. 한번은 제주에서, 한번은 백두산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제주에서 한다는 것이 북한 지도자의 신변 안전에도 도움이 되고, 좋은 경관 속에 제주를 홍보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리도 트럼프처럼 리조트에서 정상회담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그 다음은 백두산에서, 그 다음은 강릉에서, 그 다음은 또 북에서. 그렇게 끊어지지 말고, 계속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회담을 보며, 두 정상의 웃는 얼굴과 대화를 보며, 이런 날이 계속 되길 소망해보고, 또 제주에서 두 정상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산책하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자료 참고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08&aid=000269595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7&aid=0000219179

http://m.gokorea.kr/news/articleView.html?idxno=4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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