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꿈이 뭐니
양 자 장 에 서
꿈을 종착지로 볼 때, 삶 자체를 놓치는건 아닐까.
하고 싶은 걸 제일 먼저 하고,
내 꿈은 양자의 세계에 속해 있다. 없다가도 생기고 동시에 존재하면서 시시각각 바뀐다. 시간에 따라 배열되어 있지도 않다. 가능성만 있는 양자장에 내 꿈의 씨앗이 떠돌고 있는 것을 상상해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모든 게 잘 될 거야, 라는 두리뭉실한 말 또한 허용하고 싶어진다. 그래, 모든 꿈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가볍게 여러 가지를 꿈꾸는 것도 좋다. 그렇다고 거창한 꿈이 싫지도 않다.
나의 경우를 보면 그때는 도저히 이루기 힘든 어려운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이루어진 것도 있고, 정말 쉬운 꿈이라고 여겼는데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있다. 난 밤하늘의 별을 향해 낚싯대를 드리우는 아이처럼 끝없이 꿈꾼다. 꿈이 이루어지면 기뻐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가능성은 둔 채로 또 다른 것을 꿈꾼다.
그래서인지 내 꿈은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다. 굳이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매 순간 나를 기쁘게 하고, 내 주위 사람들도 기뻐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 꿈은 [이렇게 해보면 너와 나의 기분이 어떨까?]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꿈은 떠올릴 때마다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생각할수록 부담스럽다거나 반드시 해내야 할 큰 과업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게 아무리 빛나 보여도 꿈이 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영역이 아닌,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경험의 영역인 것이다. 그래야만 잡다한 일상에 녹아있는 과정을 즐길 수 있다. 과정에서 과정으로 이어지는 놀이일 뿐이니까.
나는 아주 사적인 꿈 그림책을 가지고 있다. 꿈이 떠오를 때마다 거기에 그림을 그리는데 각 그림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 나의 말귀 어두운 전두엽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꿈을 그림으로 박제시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는 원칙이 딱 하나 있다.
무.조.건.재.미.있.을.것.
그림책은 잠들기 전 볼 수 있도록 침실에 둔다. 밤에 그 책을 펼치면 별에 별것이 다 쏟아져 나온다. 작은 도시를 산책하는데 내 책을 읽은 사람이 날 알아보고 말을 거는 장면, 젊고 재능 있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장면, 친구들과 펜트하우스에서 불꽃축제를 보는 장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3점을 거실에 걸어놓는 장면 같은 것들이 잔뜩 그려져 있다. 또한 일곱잎 클로버를 발견하거나 제 3의 눈이 완전히 열리는 장면도 있고 다른 차원을 여행하는 장면도 담겨있다.
너무나 유치하고 단순한 그림이라서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난 반드시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해', 혹은 '나는 꼭 이걸 가질 거야', 라는 강력한 결심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이걸 그릴 때 즐거웠으므로 그 즐거움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면 내가 그 그림 속에 있는걸 발견하곤 잠시 현기증를 느끼곤 한다.
이 글은 @peterchung님의 지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절 낯선 곳으로 자꾸만 이끄는 세 분, 꿈얘기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