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영화는 크리스찬 베일이 주연을 맡은 이퀼리브리엄입니다.
이퀼리브리엄은 2002년에 나왔습니다. 상당히 오래된 영화죠. OCN에서 처음 봤는데 매트릭스 1편에 견줄만큼 스토리가 좋은 작품입니다.
영화는 감정을 제거한 인간이 살아가는 삶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과연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감정을 느끼는 것이 불가능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리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3차대전이 발발한 21세기. 엄청난 후폭풍을 겪은 인류는 더 이상의 전쟁은 안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인간은 자극을 느끼지 못하게 해주는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을 개발, 모든 사람들이 복용 하는 리브리아라는 사회를 만듭니다. 그렇게 인류는 오감을 상실함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됐죠. 리브리아는 자신들의 체제를 굳건히 하기 위해 클레릭이라 불리는 특수조직을 만들어서 감정을 느끼는 자들을 색출, 제거시키고 감정을 유발시킬 수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없애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존 프레스톤(크리스찬 베일분)은 최고의 클레릭 요원입니다. 그는 동료 에롤 패트리지(숀 빈분)과 함께 약을 거부한 반란군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사소한 일로 인해 하루치 프로지움 병을 부수고 처음으로 감정을 느끼게 되죠. 밀려오는 수 많은 자극들로 인해 느껴지는 감정들... 존은 몰아치는 감정으로 인해 혼란에 빠집니다.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약을 다시 투여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감정이라는 것... 참 오묘합니다. 행복, 환희, 설렘, 사랑, 그리움, 감동처럼 긍정적인 것이 있고 분노, 공포, 불안 같은 부정적인 것이 있죠. 감정은 우리의 오감으로 전달되는 자극을 받아들인 후의 반응인데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므로 표현되는 것은 천차만별이죠. 영화의 배경에 나왔듯이 인류는 전쟁을 없애기 위한 방책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존이 사는 세상에선 설정상 감정을 느끼는 것이 금지된 세상이죠. 과연 그걸 연기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정말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베일은 그걸 해냅니다. 감정을 느끼지 않는 모습과 감정을 느끼는 모습 둘다 기가막히게 표현합니다. 감정을 느끼기 전의 모습은 기계 그 자체입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터미네이터보다 더 기계같은 느낌입니다. 말투에 높낮이가 전혀 없는데요. 베일 특유의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진듯 합니다. 얼굴 표정도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 변화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감정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는 미소를 띄지도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습니다. 대단히 인상적인 연기임에 틀림없습니다.
존이 처음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고, 따스한 햇빛을 보고 충만한 감정을 느끼는 표정은 충분히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맞아, 저런 느낌일거야'라는 생각을 하게끔 말이죠.
한번도 감정을 느껴본적이 없는 자가 감정을 느끼면서 머릿속에 과도한 정보가 들어옵니다. 오감을 잃고 살았던 자가 다시 오감을 되찾았을 때 어색하고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죠. 존은 그간 쌓여온 감정이 폭발하면서 펑펑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어릴 때 이 영화를 봤을 땐 단순 액션 영화라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클레릭이 선보이는 액션이 화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던지는메시지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답이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 세상에 존재할까? 만일 하나의 답만 추구하는 사회가 된다면 어떤일이 발생할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몇몇 사회 구성원들은 약을 투여하지 않습니다. 극히 소수만이 감정을 느끼는데 속된 말로 말 잘듣는 노예를 만들기 위해 대다수의 사람들의 감정을 없앤 것으로 보였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안 그러던 사람이 변한다는 말도 있구요. 권력에 취하면 변하기 마련입니다. 나의 힘이 강해져서 주변이 내 말대로 흘러가게 되면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변하고 내면에 있던 욕심들이 깨어나서 쌓이고 쌓이는 겁니다. 리브리아의 그들도 이렇게 변해버린 것 같습니다. 기만자가 되버린 것이죠.
영화는 이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마무리됩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관객 스스로가 내리도록 남겨둔 것이죠. 리브리아가 감정을 느끼는 자들을 말살하려고 했던 것처럼 한다면 또 다른 비극이 벌어질 겁니다. 다시 전쟁이 벌어지고 이번엔 모두가 같이 파멸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죠. 제가 생각하는 답은 공존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어떤 것도 혼자 살아가는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해서 살고 있죠.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 서로 양보를 하면서 싸우더라도 끊임없이 타협점을 찾는 것. 그것이 진정한 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귀욤 터지는 돌고래 그림을 그려주신 @carrotcake님과 환상적인 손글씨를 보내주신
@sunshineyaya7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