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여덟시에 잠들면 새벽 네시에 깨게 돼요.
깊은 밤에 일어나면요, 몸을 떠나 있던 영혼이 캄캄해서 길을 찾지 못하고 몸까지 돌아오는 데에 한참 걸린대요. 그래서 한 밤중에 깼을 때 발이 이곳 저곳 헛디디게 되고, 아무것도 볼 수도 없고, 내가 지금 깨어 있는 건지 자고 있는 건 지도 모르는 거래요.
영혼이 몸 안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며 어두운 방 안을 기었죠. 어둠을 물 삼아 헤험치는 기분이었어요. 더듬거리며 안경을 찾고, 지갑을 찾고, 핸드폰을 찾았어요. 핸드폰의 전원 버튼을 눌렀지만 아무 것도 없었죠. 새로 온 알림이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나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 걸 확인하자 길고 긴 바늘이 심장의 혈관, 좌심실과 우심실 모두를 쿡 찌르고 지나갔어요. 너무 아파서 몸을 웅크렸죠.
뭔가 마셔야 했어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밖으로 나와 산동네 초어귀에 있는 편의점을 찾아 내려갔어요. 방 구석에 굴러다니던 동전 세 개와 주머니 속의 구겨놓은 지폐 한 장으로 소주를 샀죠. 알바는 피곤에 찌들어 있었고, 목소리는 사무적이었어요. 힘든 사람을 보자 조금 위안이 되었지만, 편의점에서 나와 내 집 쪽을 바라보자 기분이 더 어두워졌어요.
집을 찾을 수도 없게 어두운 밤이 산을 뒤덮고 있었죠. 소주병을 따서 조금씩 몸 속으로 흘려넣었어요. 아직 침침한 머릿속을 알콜이 치고 지나갔어요. 산 아래와 산 위를 번갈아 쳐다봤지만 가고 싶은 곳은 아무데도 없었어요. 원래대로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갔겠지만 조그만 변덕을 부려 산동네 아래로 내려갔어요. 산동네 입구와 광안지구 사이를 가르는 정류장을 지나고 카페 바리스타를 지나서, 더욱 더 깊숙이.
새벽부터 일을 하는 차가 있었어요. 화분들을 잔뜩 바닥에 부려놓고는 털털거리며 떠나갔고, 가게 앞에 잔뜩 나온 화분은 제각기 피어 있었어요. 꽃망울이 잔뜩 맺힌 것, 반쯤 피어 향기를 풀어내는 것, 길쭉하니 내 키만큼 큰 것. 하나같이 자기주장이 넘쳤어요. 향기가 밤공기 사이로 흘러 넘쳤어요. 하지만 내 눈을 끈 건 연푸른빛의 수국이었어요. 큼직한 물방울을 떼어낸 것처럼 탐스러웠죠. 잘못 건드리면 쏟아져 버릴 것 같아서, 조심스레 꽃 속으로 손을 넣어서 만져보았어요.
예쁘죠?
누나가 내게 던진 첫 마디였어요. 메이저리그의 170km 강속구 투수처럼 너무나 시원하게, 한 번도 안타를 맞아 본 적 없는 것처럼 내게 말했죠. 누나의 까만 눈동자가 반짝였어요. 누나가 수국 옆에 쭈그려 앉아 나를 보는 데 환하게 빛났어요. 나는 얼굴 가득 피어있는 미소에 눈길을 빼앗겼어요. 해가 천천히 떠오르고 있어서 얼굴에 검푸른색 어둠이 져 있었지만 누나의 웃음은 그런 걸로 가려지지 않았었어요.
어. 예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