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얏!!"
한참 달리다가 발을 헛디뎠어요. 슬리퍼가 미끄러지면서 왼쪽 발목까지 올라갔고 왼쪽 엄지발가락으로 아스팔트 바닥을
직각으로 디뎠어요. 왼쪽 발에서 쪼개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죠. 날카로운 칼날이 엄지발톱을 자르고 지나간 듯 지끈 아팠죠.
아흐으으 하는 비명을 내뱉으며 희미한 가로등 불 아래로 깨금발을 뛰었어요. 확인해보자 왼쪽 발톱이 거의 박살나다시피 쪼개져 있었죠. 피가 물 솟듯 발톱 조각 사이로 올라왔어요. 조각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슬리퍼를 고쳐신고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갔어요.
온 몸은 땀 범벅이었죠. 찬 물로 돌려놓고 샤워기를 틀었어요. 옷을 벗으며 왼쪽 발에 닿지 않도록 조심했어야 했어요. 물이 들어가지 않게 바닥에 앉아 몸을 씻고, 변기 위에 앉아 발목으로 물을 살살 흘려보냈어요. 상처로 물이 들어가는 순간 이를 질끈 깨물었어요. 피는 어느 정도 엉겨붙어 있었지만 상처로 물이 찔러 들어가는 감각은 제 발가락을 우그러뜨리기 충분했어요. 묻어있는 흙과 모래를 어느정도 씻어내고는 물을 꺼버리고 수건으로 살살 두드렸어요.
수건에 쩍쩍 갈라진 핏자국이 남았죠. 수건을 빨래통에 던져놓고 옷을 입었어요. 그리고 대문 옆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 대문 위에 앉았어요. 그 있잖아요. 대문 위에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 있는 곳. 그 곳에 앉아 산 동네 아래가 파노라마 사진처럼 너어어얿게 펼쳐졌죠. 태양은 검은 대지를 푸르스름하게 그을리며 떠오르고 있었어요. 산동네에서 유일하게 마음이 드는 건 일출과 일몰 때 뿐이에요. 흉물스러운 건물들도 지금만은 아름다워 보이니까요.
남아있는 소주를 천천히 마셨어요. 아직 미지근하진 않고 차가웠죠. 새벽의 공기가 코끝을 간질였어요.
세상이 이렇게 일출과 일몰만 있는 세상이면 나는 어찌저찌 살아갈수 있을 것 같았어요. 슬픔도 아픔도 흐릿해 지는 시간. 어떻게 살아야 할 지는 잊어버리고 그저 앉아서 술이나 마실 수 있으면 좋았죠. 해가 지거나 뜨는 걸 보면 가슴 한 구석이 아렸지만 뚜렷하게 슬프진 않았어요.
내 감정에 푸르거나 주황색인 물감이 짙게 발려서, 감정이 그저 색으로 변하는 느낌이었죠. 불교에서 '기쁨이나 환희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괴로움이다'란 말을 이해할수 있었어요. 내 감정은 지금 일출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