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밤] 할 말이, 많은데. -1-

lekang(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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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말이, 많은데.

안녕하세요, 혜진누나. 결국 편지로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누나의 생일 이후로 누나 찾아가기가 조금 꺼려져서요. 얼굴 보고 긴 이야기를 할 자신도 없고. 할 말은 많은데 다 잊어버리거든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요? 누나는 저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저는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그때 이야기를 하면 누나는 나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아, 그때 그게 너였지 라고 할까요?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곳은 내 집이에요. 보증금 50에 월 15만원, 세탁기만 있고 수도, 가스는 별도에요. 발을 벽에 붙이고 누우면 머리가 닿을 것 같이 좁아요. 방이라기보다는 관이죠. 전기보일러는 5분만 쓰면 찬물이 쏟아져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축축해요. 방은 엄청나게 좁은데, 빛은 이 좁은 방을 다 채우지도 못해요. 창문을 벽에 대충 박아놔서 그래요. 집주인은 성격 괴팍한 아저씨에요. 보일러 좀 고쳐 달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원래 그런 거라고 대충 때우고 넘어가요.

밤에는 조용하고 어두워서, 방에 누워있으면 세상에 나 혼자 남아요.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찾고 싶은 사람도 없어요. 밖에서는 고양이 우는 소리, 다투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말고는 없어요. 아무 것도 없는거나 마찬가지에요.

외로움을 쫓아 보려고 불을 켜고 책을 보기도 해요. 책은 나를 먼 곳으로,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아주 멀고 먼, 상상조차 하지 못한 곳으로 나를 데려다 줘요. 가끔은 상상해 보기도 해요. 내 남루한 삶에 누군가 햇빛처럼 다가와 나를 구해주는 상상. 그 사람은 후배일 때도 있고 선배일 때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의 점원일 때도 있고 손님일 때도 있어요. 행복한 사람들을 멀리서 구경하는데, 밝게 웃으면서 날 쳐다봐 줘요. 혼자 뭐 하고 있냐고, 같이 이 쪽으로 나오지 않고 뭘 하냐고. 여기서 상상이 끝나고, 작고 초라한 내 방으로 돌아와요.

그런 날 자려고 누우면 온 몸 가득 물이 차올라요. 옆으로 누워 물이 떨어지도록 두고 우울에 몸을 맡겨요. 이리저리 흔들리다 잠이 들면 항상 악몽을 꾸죠. 어두컴컴한 지하실과 까마득한 옥상이 일어나고 싶지 않아도 새벽 네시에 눈이 떠져요. 밖으로 나가서 산동네의 골목골목을 헤매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갈 곳이 아무데도 없어요.

외롭고 쓸쓸한 나날들이었어요.


오늘부터 한 꼭지씩 써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