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캐리어 하나의 삶

lekang(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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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사를 한 지도 여덟 번째다. 아빠의 일을 따라가기도, 빚에 쫓기기도, 출마를 위해서도, 상처들을 피해 도망가기도 하면서 조금의 요령이 생길 법도 하지만 이사의 요령은 도무지 생기지 않는다. 제일 사랑하는 것들은 들고 가지만 덜 사랑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구분하는 작업은 어려웠다. 내가 사랑했는지 미워했는지 구분할 수 없어 살 수 있는 것은 버리고 가자고 생각했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사를 할 때에만 해도 필요 없는 물건이라 생각했었지만 떠나보낸 뒤에야 사랑했었단 사실을 알게 된다. 아니면 내가 좋아하던 것이었지만 이사 과정에서 어디론가 쏙 사라져 버린다던가.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다시 만난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미워하던 것은 인생의 제일 중요한 시점에서 마주쳤고, 보고 싶던 것은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보다 부득 탐승이란 말을 좋아한다. 승리를 탐하면 얻지 못한다. 노력을 탐하면 대가가 가난할 것이다. 사랑을 탐하면…. 외로워질 것이다.

이제 캐리어 하나 이상의 짐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가급적이면 물건을 사지 않으려 한다. 물건에, 사람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 언제든지 버려도 괜찮을 것들로 주변을 채웠다. 만 오천 원 짜리 나일론 바지와 나무젓가락과 종이컵. 머그컵과 쇠젓가락을 쓰던 내가 기억나지만, 기억하기만 한다. 내가 사랑했던 물건들은 저 멀리에 있고, 내가 사랑했던 나는 오래된 과거에 있다. 떠나야 할 시간이 오면 사랑한 적 없다고 중얼거리며 사라지면 된다.

그러나 삼 년 째 가방에 달고 있는 꽃처럼 버리지 못할 것들은 남아 있다. 조금씩 내가 좋아지던 시절을 기억하게 해 주는 소중한 것.

여덟 번째 이사에선 내가 사랑한 게 뭐였는지 절대 잊지 않을 거다. 나는 이번엔 도망치지 않고, 내가 원하던 쪽으로 나아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