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예비군은 일상의 종말

lekang(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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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년차가 쌓여가면서 벌써 4라는 숫자가 찍혔다. 제대한 지가 아직도 엊그제 같은 데 벌써 4년이나 흘렀단 말야? 스스로 깜짝 놀라면서 4년 동안 내가 뭘 이뤘나 살펴보니 몸무게 앞자리 숫자가 5에서 7로 바뀐 것 외에는 별로 변한 게 없다. 아니 수염도 좀 늘었고 뱃살도 늘었으니 얻기는 많이 얻었다고 중얼거려 보지만 마음은 영 공허하다. 분명히 제대하면 많은 것을 이루겠다고 다짐했지만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그래도 예비군 훈련 통지서만은 꼬박꼬박 날아와서 지금 네 번째 업적을 달성했다고 알려주고, 한번만 더 하면 위업을 달성한다고 알림을 띄워준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선배님. 나오셔서 훈련받을 시간입니다. 저번에 훈련한 건 잊지 않으셨겠지요? 일상에서 잠시 떠날 시간입니다. 그래, 정말로 예비군은 일상의 종말이자 잠깐의 휴식이다.

예전 '예비군 훈련 무시하는 여직원 썰' 따위의 제목으로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그 내용인 즉슨, 회사에 예비군을 간다고 하고 3일간 업무를 빠지게 되자 여직원이 '부럽네요~ 진짜 쉬러 가시는 거잖아요' 란 말을 했다고, 굉장히 기분 나빴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그때에는 굉장히 분노했던 것 같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왜 그 말에 발끈했는지 모를 노릇이다. 3일간 조교 말만 들으면 되고 귀찮게 하는 클라이언트도 없는 데다가 폰은 강제로 압수해 주니 연락을 받을 일도 없다. 밥 주지 옷 주지 못 나온다는 것만 빼면 일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있는 데 도대체 왜 화를 내는 것인가?

폰을 뺏어간다는 말을 하니 이모의 일도 생각난다. 이모는 작은 업체의 중간 관리직이었고, 폰이 고장나서 3일간 연락을 못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큼 살맛나는 나날이 없었다고 한다. 짜증나게 하는 전화도 안 받고 그냥 일만 하면 됐다고. 실험에서도 폰이 있으면 주의력이 25% 감소한다고 하는데, 휴대폰이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거릴만한 설득력이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일이 자신의 인생과 분리되어 있어서 생기는 일이다. 일이 즐겁고 신난다면 예비군이 괴로울 것이고, 일이 고통스럽다면 예비군이 신나고 즐거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예비군으로 인해 현재 굉장히 신나 있다는 상태를 통해 증명된 것 같은데, 하루에 여덟 통씩 매니저에게 전화가 온다는 사실은, 예비군을 하루라도 더 받고 싶어지게 한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