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

leeja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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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다 재워놓고 신랑이랑 코코를 보고 난 뒤 자려고 누웠는데...
밖에 바람이 심하게 분다. 창문이 덜컹덜컹...
고급진 브라질산 원두커피를 정맥주사 했더니 뇌만 살아 있는 듯하다.

스팀잇 가입한지 126일이란다.
그중 한 26일은 글을 어떻게 올리는지 몰라서 아예 들어와보지도 않았으니...
가입인사 한지는 대충 100일 정도 되지 않았을까.. 한다.
보통 남녀 연애는 100일쯤 되면 권태기가 온다고 했던거 같은데...
나도 슬슬 스팀잇과의 연애에 권태기가 오는 것인가?
처음엔 스팀잇이 괜찮은가에 의심이 계속 가서 할까 말까 하다가...
콩깍지가 씌이고 가족들보단 스팀잇에 애정을 쏟다가...
마냥 좋게만 보이던게 하나둘씩 밉게 보이는 단계..
여기 말로 현자타임? 용어는 잘 모르겠다.
권태기가 온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싫지 않아 글을 주저리 주저리 쓰며
누군가가 좀 봐줬으면 하고 있다.

어떤 분들은 나보다 늦게 가입했는데 나보다 팔로워 숫자도 많고 보상도 많고 명성도도 높더라...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하고...
나도 나름 글쓰기 시작하고 몇일 빼고는 꾸준히 포스팅을 해왔다.
나는 원래 글을 길게 쓰지 않는다. 간결한데 임팩트있는 글들이 좋아서...
하지만 스팀잇의 글엔 보상이 따르는 지라 페이스북에 하듯이 짧게 쓰기도 애매하고. 나름의 정성을 엄청 들인다.
읽기엔 시간이 얼마 걸리진 않는 사진이 많은 글들... 사진을 올릴 때 하나하나 변환해서 올리느라 시간이 많이 드는 편이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글을 쓸 때 보다 사진이 많은 글이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그래도 100일간의 댓글 정이 있는지라, 자주 찾아주시는 이웃들이 생겨서 처음 보다는 엄청 보상이 늘었다. 요즘같이 스팀이 떨어져가도 이전과 비슷한 보상을 받고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사실 남의 집 가정사 이야기. 애들 이야기. 간호사 처우 개선 이야기가 뭐 그리 흥미로운 글도 아니고...
읽어주고 거기다가 댓글도 달아주면 감사한 일이지...
나의 글의 보상은 내가 결혼 이전에 살아온 인생과 비슷한거 같기도 하다. 홈런을 친적도 없고 바닥을 친적도 없고... 그냥 고만고만한....

내 인생은 굴곡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 기억엔.. (내 인생의 굴곡은 나의 신랑을 만나서 시작되었다.)
난 결혼 전까지는 내 삶의 끝은 오지에 선교를 가서 순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료 선교를 목적으로 의대를 가려다 실패하고 재수는 도저히 못하겠어서 간호대를 간 것이었다. (의대진학 실패가 굴곡이라면 굴곡일 수도 있겠지만 난 너무도 빨리 의대를 포기 하고 간호대로 간거라 굴곡이라고 하기 좀 민망하다.) 당연히 대학교에서도 선교단체에 들어가 활동하고 훈련이라는 것을 받고 지냈다. 한 번은 "전도 폭발"이라는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왜 받았을까 싶다.) 거기서 다른 사람을 전도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방법에서 인트로가 예수 믿기 전 후의 자기의 삶에 대해 간증을 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인생에 무슨 굴곡이 그렇게 많은건지... 다들 힘들었다가 예수님 만나서 지금은 좋다는 말들을 술술 말한다.
또 다른 사람은 믿지 않는 삶을 살다가 예수님 만나서 지금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말한다.
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그냥 교회를 숨쉬듯이 다니고, 난 당연히 선교사로 살아야한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을 전하다 죽어야한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사람처럼 격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없었다. 아무리 짜내려고 해도 드라마틱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내 삶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땐 난 당연히 그냥 하나님이 존재하고 예수믿으면 천국간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안믿어지는게 더 이상했다. 그런데 선배언니는 뭔가를 계속 말하라고 한다. 뭔가 불편했지만 그래야 한다니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던 적이 있다.

그러다 학교 병원에서 선교 장학생을 뽑았다.
병원에서 다른 나라에 선교 차원으로 지어놓은 병원이 있는데, 2년간 장학금을 받고 졸업 후, 임상 경험을 조금 쌓은 뒤, 그 병원으로 가서 2년간 일하는것이 조건이었다.
그때 난 당연히 지원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대학교에서 4년 내내 선교 중찬단 동아리에서 피아노를 쳤고 학교 채플 시간에도 피아노 반주를 계속 하던 아이라 교수님들도 내가 선교 장학생 지원을 한다니 당연하게 밀어주셨다. 지원자가 나말고도 1명 더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언니가 되었어야 했다. 왜 내가 된건지 모르겠다. 어려서인가...
암튼 그렇게 장학금을 받고 졸업을 하고 당연히 학교 병원으로 취직을 했다. 그런데 병원 선교회는 3년이 지나도록 날 내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날 소아병동에 짱박아놓구선 성인파트로 로테이션을 시켜줄 생각을 안하는 간호부에 가서 로테이션을 시켜달라고 말했더니 난 아직 순서가 안되서 시켜줄 수 없단 말만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선교회 목사님을 찾아갔다. 나 안내보내줄거냐고? 물었더니... 현지 사정이 어려워서 그쪽 병원으로 가긴 힘들것 같다고 선교지를 알아서 찾아보라는 답을 들었다.
뭐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같이 장학금을 받았다던 의대 학생은 장학금을 반납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사실인지 아닌진 모르겠다.)
그래서 마침 미국에 같이 가자는 친구도 생겼겠다. 이런저런 핑계로 도미했다.
도미 해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난 거기서도 교회 생활을 열심히 했다. 그래서 원래는 6개월만 어학연수하다가 귀국하거나 아님 학교공부를 할 생각이었는데 그냥 거기 교회 생활이 너무 행복해 교회가 주였고, 나머지 일은 부가 되었다. 마치 미국으로 선교를 간 듯 했다.

그러다 신랑을 만났다.
우리 둘은 남들이 보기에 소위 신앙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남들도 우리에게 속고, 우리도 서로가 서로에게 속았다. 사실 나도 내가 신앙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나한테 속고 있었으니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볼 수 밖에.. 지금 생각해 보면 신앙이 좋다기 보단 그냥 교회에서의 삶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내 삶의 굴곡이 생기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신랑의 삶은 굴곡의 연속? 그냥 삶이 굴곡이었다. 그래서 나이보다 성숙해 보였나보다. 그런데 그 굴곡이 나에게도 같이 찾아 온 것이었다. 나의 평탄한 삶이 그의 굴곡진 삶을 덮기엔 그의 굴곡이 너무 컸다. 그리고 그 굴곡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나의 평이한 삶의 영향이었을까 그 굴곡도 나름 재미있게 넘어 온 것 같다.(지나고 나서라 재밌게 느껴지는건지도...)

그 굴곡이 나의 교회 생활에 영향을 알게 모르게 미쳤을까? 한국에 돌아와서 난 몇달 전까지만 해도 교회 가나안 성도였다. (가나안을 거꾸로 하면??)
한국 교회에 실망하고, 목사들에 실망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 실망하고... 그리고 교회가면 신랑은 늘 화가 나 있었다. 누가 화내는걸 견디기 힘들어하는 성격의 나는 그 모습을 보기 싫어서 교회를 안나갔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교회 생활에 콩깍지가 씌었던 게 벗겨졌다 해야할지... 아님 믿음을 잃어버린거라 해야할지... 잘 모르는 상태이다.

지금은 사회 문제가 더 눈에 보이고, LGBT들의 삶에 관심이 가고,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더 맘에 와닿고, 아이들과 마음 아픈 사람들이 더 신경이 쓰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 바로 선교를 가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 갔으면 과연 가서 내가 무얼 전하는지는 알고나 있었을까? 그 사람들의 고민과 아픔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을까? 너무나 뻔한 교회 말로 그 사람들을 위로한답시고 우월한 맘을 가진 채 그들에게 더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싶다.

원래는 스팀잇에 대한 내 마음의 소리를 적으려고 시작했는데.... 나도 보상 많이 받고 싶고, 많은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싶고 뭐 그런 이야기를 그럴듯 하게 포장 해서 쓰려했는데......
역시 제목을 잘 지어야 하나보다.
왜 내 삶을 고백하고 있는지...정말 마음의 소리가 나왔다.

역시 이런 글은 모두를 재워 놓고 어두운 밤에 모니터 불만 켜놓고 써야 제 맛인듯....

마음의 소리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