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 to @carrotcake &
@crowsaint
5월 1일부터 복직을 명(?)받고 간호사 유니폼을 가지러 병원으로 갔다. 병동 탈의실로 가던 길에 전에 근무할때 퇴원했던 환자분을 만났다. 재활 환자들이라 입퇴원이 반복이다. 그분도 머리가 꽤 길었다. 나도 머리가 꽤 길었고... 머리가 꽤 길어버린 간호사와 환자가 보자마자 알아보고 인사했다.
(배를 가리키며) 어? 아는?(애기는?)
당연히 밖에 나왔죠~!!
간단히 인사하고 5월에 다시 온다고 알리고 탈의실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이전에 같이 일했던(지금은 수선생님과 그 선생님 빼고는 다 새로운 간호사들이다.) 선생님이 약통을 들고 돌아다니다 눈이 마주쳐 바로 탈의실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이야긴 못하겠지만 이야길 듣는 데 숨이 턱턱 막혀온다. 그냥 다시 복직 안한다 그럴까 란 생각이 굴뚝 같았다. 상급자의 이상한 고집으로 신규는 신규대로 트레이닝이 제대로 안되고, 기존에 있던 간호사들은 그들대로 일이 힘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힘들어야할 상황이 아닌데... 상급자에게 물어보면 그 또한 힘들다고 이야기하겠지.. 아.. 답답해. 며칠 전 일인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답답해져 온다. 난 과연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잠깐 하다가 옷을 찾아야 해서 그 선생님은 다시 일하러 가고 난 내 옷장이 있던 곳을 가봤더니.. 음?? 내 이름이 없네? 다른 곳을 찾아봐도 없다. 옷만 들고 냉큼 도망가려 했던 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할 수 없이 점심을 먹으러 간 수선생님을 기다려야했다. 간호사실로 가니 남자 신규 간호사가 혼자 스테이션을 지키고 있었다.
왜.. 이 아이를 혼자 놔두고...
란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일단 전후 사정을 모르니 넘어가고.. 아까 이야기 했던 선생님이랑 간호사실에서 수선생님을 기다리며서 이런저런 병동 사정을 들었다. 다시 답답함이 밀려왔다.
우리 병동이 일이 힘든 곳은 아닌데. 인력 관리? 시스템의 문제로 일하는 사람들이 불만을 키우고 있는 듯 했다.
아... 일하자 마자 수선생님과 싸워야하나? 란 생각이 계속 들지만 난 갈등을 극도로 싫어하고, 평화주의자라 실제로 싸우진 못한다. 언제까지나 마음 뿐이지만 그래도 갈등은 계속 되었다.
그러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온 수선생님을 만났다. 옷을 가지러 왔는데 없어서 기다렸다고... 다른 선생님들과 인사할 겨를도 없이 옷을 찾으러 탈의실로 다시 돌아가던 길에 수선생님이 말했다.
간협 니가 알아서 등록해래이..
아.. 간협 등록이라니...
간협이란 대한 간호 협회의 줄임말인데 한국에 있는 간호사를 대표하는 단체라고 할수 있다. 대표하지만 대표를 하지 못한채 회비만 걷어가고 자기들의 배를 불리기 바쁘고 회비 내역 공개하라고 하면 대충 써서 내고. 무엇보다 아직도 간선제로 회장을 뽑는다. 대통령도 직선제인데 간호협회가 간선제가 대체 웬말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번에 하늘 나라로 간 아산병원 간호사, 이대 목동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경찰에 끌려간 간호사, 얼마전에 국립중앙의료원 화장실에서 숨진채 발견된 간호사들을 위한 입장표명이나 그들을 위한 무슨 행사나 뭐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있으며, 간호사들의 이직률이 그렇게도 높은데 그들은 뭐 이렇다할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내 권리도 못지켜주는 대표를 대표라고 할 수 있을까 싶어 작년엔 등록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아도 간호사 일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회비도 1년에 10만원돈 받아간다. 난 10만원도 없다. 내기도 싫다. 흥.
아무튼 이런 곳이라서 수선생님한테 말했다.
아.. 쌤.. 우리한테 해주는 것도 없는데 꼭 등록해야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니는~ 아무리 해주는게 없어도 (아무것도 안해주는건 인정하나보다..) 부모가 &%&&*&^%$
부모가... 에서 그 뒤에 한 말은 기억이 안난다. 간협을 부모로 비유하다니...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들 힘들어하는데 자기들만 배불리고 있냐고...
그래서 돈이 없어서 협회비 못낸다 했더니 카드로도 된다나 뭐라나.
아.. 돈이 없는데... 하며..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런데 하는 말이..
그러다 병원에서 짤리수도 있어...
뭐? 말도 안되는 소리란걸 알았지만 그런 협박같지도 않은 협박을 농담으로라도 받으니 짜증이 확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속이 안좋았다. 내가 왜 그딴 협회에게 돈을 내는가. 그동안 멋모르고 냈던게 너무나 아까워서 다 돌려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중인데... 등록 안한다고 하면 복직 하자마자 수선생님과 싸워야하는건가... 간협등록 말고도 병동에서 하고있는 팀 간호에 대해서도 할말이 무진장 많기 때문에 어떻게 싸워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애들을 데릴러가면서도, 저녁을 준비하면서도 내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신랑이 퇴근을 하고 집으로 왔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배가 너무 고팠던 신랑이 데자뷰처럼 내 옆에서 윙을 먹고 있었다. (역시 사랑은 변하는 거였다. 더이상 윙의 냄새가 날 자극하지 못했다. )
그래서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간협 등록 이야기 팀 간호 이야기... 간협 등록을 안할라면 수선생님이랑 싸워야할지도 모르겠다. 라고 말하자 그러면
난 돈이 없으니 등록을 하게끔 하고 싶으면 내 달라고 하라고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야한다
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때는 해결책이 듣고 싶었던 게 아니어서...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지 못했다고!!
라고 이야기 하고 그 주제에 대한 대화를 끊었다. 신랑도 별 말 없이 윙을 먹다가 저녁을 준비하고 먹었다.
그러고 시간이 좀 지나서 사호가 밥 먹을때 마다 께작거리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하고 있는데... 신랑이 뜬금 없이 말했다.
You don't have to be a hero.
응?? 왜? 갑자기? 내가 사호 밥을 먹이는데 갑자기 왜 영웅이 되야하나? 싶어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말을 계속 한다
Be a snake. Don't be a hero. Hero can give us 감동, but they die. Snakes change the world.
알아 듣고 보니 설거지할때 말했던 이야기에 대한 말이었다.
우린 가끔 아이들이 못알아 듣게 하기 위해 영어로 이야기한다. 식민지 발음으로.... 나야 뭐 잠깐 어학연수 다녀온게 다지만 우리 신랑은 꽤 오래 미국에서 공부를 했는데 발음은... 음... 우리끼리 말하는거고 아이들이 못알아듣는게 주 목적이라 굳이 혀를 굴리지 않고 영어를 말하지만 한국말을 하는 것처럼 발음한다. 이때는 굳이 그럴 필욘 없었으나 신랑이 혼자 계속 생각하다가 나에게 말해준 이야기라 영어로 했나보다.. 가끔 신랑을 보면서 머리 검은 외국인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암튼 저렇게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난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재주가 있는 듯 하다. (아님 말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
영웅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영웅은 결국 죽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뱀들은 기다렸다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나보고 영웅처럼 싸우다가 죽지 말고 뱀처럼 기다렸다가 변화를 시키란 말인거다.
그 말을 듣고 난 더이상 싸울 이유가 없어졌다. 난 영웅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감동이 아니라 변화다. 그리고 난 죽으면 안된다. 내겐 딸린 식구들이 너무나 많다. 적어도 신랑의 전역인 12월까지는 어떻게든 죽지(그만두지) 않고 버텨야하는 상황이다. 내 만족으로 사람들의 감동을 주려다 딸린 식구들을 굶길 순 없으니..
문제는 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는거다.
아.. 머리가 더 아파온다. 싸워야하냐 말아야하냐보다 더 아프다. 일단 일하기 시작하면 무슨 수가 나겠지.... 일도 시작안했는데 벌써부터 고민이 많다.
일단 부딪혀보자.
욱!욱!이 올라올 지라도 "영웅 말고 뱀"을 생각하며 잘 해봐야지...
글을 적고 있으니 신랑이 옆에서 보고 자꾸 자기를 판다며...
그래서
당연하지... 여보 팔고... 애들 팔고...
당당한 여자란 말을 들었다.
나는야 당당한 뱀같은 여자.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