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인으로부터 내 그림에 대해 아주 신랄한 평가를 받았다.
너만의 그림 스타일을 가지기 위해 더 노력해야한다.
너의 그림은 독특하지 못하다.
이 그림 스타일은 어디서 많이 본것 같다. 이러면 안된다. 이거 지워라.
스킬은 있는데, 특별하진 않다.
이런 내용이었다.
사실 이런 의견은 처음 들어봐서 많이 당혹스러웠고, 그리 말하는 지인 앞에서 난 말 한마디도 못한 채 수긍아닌 수긍을 해버렸다.
처음엔 자존심에 태연한 척, 아닌 척 했다.
어떤 비판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은 했지만, 마음은 그러하질 못했다.
나름 특별한 의미부여를 했던 내 작업들이 그저 이름없는 그림에 불과해져버린 듯한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그림에 떳떳하게 대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원망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그분이 하신 이야기는 내 작업의 발전을 위한 조언이었음을 알아차렸다.
물론 처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그 말이 비판을 받아들이는 힘을 길러주는 원동력임을 왜 몰랐을까 싶다.
마치 온실속에 자란 화초가 처음으로 바깥 공기를 맡아보는 순간이랄까?
처음 그 비판을 받아들이는 나의 자세가 '0' 이었다면 지금은 '10'정도는 된 것 같다.
그림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조급함과 동시에 아직 갈길이 멀다는걸 깨달았다.
아마 나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때 그 순간 말을 잇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시작도 하기 전에 나도 모르게 내 작업에 대해 과대평가를 한건 아닌가 싶다.
그분의 말씀은 내 자존감의 고속 낙하 상승을 맛보게 했지만, 그 덕에 난 내 그림과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내가 더 노력할께, 시간이 오래 걸릴 지라도 차근차근 나아간다면 결국 너와 난 완연한 한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너도 나이지만, 너와 내 본연의 색을 더 진하게 부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께.
그러니 계속 함께 하자.
아직도 난 그저 어린 온실속 화초같다.
조그만한 비판에도 힘들어하고, 받아들이는게 어렵지만 이젠 마음 한켠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 순간 기분 상한 감정을 생각하기 보단 좀더 깊게 상대의 의중과 내 그림의 발전에 대해 생각해 보자.
꾸준히 해보고 내 스타일의 정점을 찾을 때 저런 비판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땐 당당하게 이야기 해야지.
이 그림이 나라고.
손잡고 끝까지 가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