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1475.html
[박권일, 다이내믹 도넛] 그 ‘공정성’의 의미
<요컨대 ‘공정성’에 대한 집착은, 생존 불안과 탈락 공포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흔을 넘은 나는 이 지옥을 만들어낸 책임, 막아내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유시민씨는 어떨까. 그는 국회의원과 장관까지 역임했던 참여정부의 핵심 인사였다. 나 같은 무명소졸보다 작금의 사회가 만들어지는 데 훨씬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나는 기억한다. 참여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대선 공약이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송두리째 내팽개쳤던 것을. 비정규 노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부동산 대책은 최악의 재앙이 되었으며, 부의 양극화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졌던 것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박권일 씨의 공정성에 대한 지적에 동의한다. 나 또한 이런 일을 막아내지 못한 무명소졸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지금의 2-30대들이 공정성에 대해 예민해진 것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을 두고 장관과 국회의원을 한 참여정부의 유시민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이른바 진보라는 사람들이 참여정부 기간 내내 노무현 대통령을 집요하게 공격해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 탄생에 1등공신이 된 것과 아주 닮아있다.
박권일 씨가 유시민 씨에 대해 지적하는 부분이 전부 틀리다는 얘기가 아니다. 맞다. 2-30대들이 공정성에 집착하게 된 데에 유시민 씨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직접적이고 분명한 책임이 있는 이명박과 박근혜를 놔두고 10년을 넘게 거슬러 올라가 장관 유시민, 국회의원 유시민을 소환해 책임을 묻는 것은 책임의 소재도 박권일 씨가 사태를
잘못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 9년간을 경험하고도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끄는 격이다.
참여정부 때 혹은 참여정부가 지난지 몇년 안된 이명박 정부 때 공정성 문제가 이렇게 첨예한 문제였나?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이렇게 됐다. 근데 왜 엉뚱하게 유시민에게 책임을 묻는가?
진보를 자처하는 인간들 중에 진보 진영의 비판이 이명박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며 반성하는 인간을 본 적이 없다. 그저 옳기만 한 소리를 떠들어 댈 뿐 자신들이 하는 말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이가 거의 없다.
'거시적 안목과 전략적 인내심이 없는 진보, 사안의 경중과 완급과 선후를 모르는 진보, 한 사회가 걸어온 경로의 무서움과 사회세력 간의 힘의 우열이 가진 규정력을 인정하지 않는 진보, 한사코 흠과 한계를 찾아 폭로하는 것이 진보적 가치의 전부로 착각하는 진보는 무익할뿐 아니라 해롭다'는 이태경 소장의 외침은 자신들의 '옳기만함'을 '옳음'으로 착각하고 있는 진보들 앞에서 참으로 무망하고 공허하다.
대한민국은 언제쯤 제대로 된 보수, 제대로 된 진보를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