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슬리핑 로드와 새벽 빨래의 낭만

kyslmate(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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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핑 로드

 오로지 한 가지 용도로만 사용하는 나만의 도로가 있다. 바로 ‘슬리핑 로드’다. 내가 이름 붙인 도로다. 비가 유리창을 뚫을 기세로 쏟아지는 지난 토요일에도 어김없이 아이를 재우기 위해 슬리핑 로드로 나갔다.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주말과 공휴일엔 집에서 아이의 낮잠을 재워야 한다. 어린이집에선 불을 끄고 다른 친구들이 자기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면 자연스레 잠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집단 최면에 걸린 듯 순순히 낮잠을 잔다. 하지만 집에선 사정이 다르다. 딸은 마음먹고 재우지 않으면 낮잠 잘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이의 낮잠은 아이와 부모가 윈-윈 하는 일이다. 아이는 일상의 리듬을 유지할 수 있고, 부모는 달콤한 휴식 시간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내 쪽에선 두 번째 이유로 아이의 낮잠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땐, 아기 띠를 하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배회했다. 몇 바퀴를 돌다보면 아이는 잠이 들었다. 완강히 저항하는 날에도 위 아래로 바운스를 좀 해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곯아 떨어졌다. 이젠 아기 띠를 하기엔 커버렸다. 그래서 요즘은 낮잠을 위한 드라이브를 한다. 드라이브 코스는 일정하다. 아이가 잠이 들 때까지 ‘슬리핑 로드’로 명명한 도로를 돈다. 보통 10~20분 안에 아이는 잠이 든다.

 비가 사납게 내리던 날, 어김없이 슬리핑 로드로 나왔을 때 아이는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통 젖은 세상을 차분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난 윤건의 노래를 틀었다. “괜찮아. 듣니. 내 맘이 보이니” 라고 나직이 묻는 윤건의 음성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가 오래 깨어 슬리핑 로드를 몇 바퀴 더 돌아도 좋을 것 같았다. 윤건의 목소리가 이렇게 좋은데, 왜 <비긴 어게인2>에선 건반만 치고 노래는 안하는 거야? 하는 생각을 했다. 라이브에 약한 거니? 내 맘이 보이니? 라고 윤건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감안하고 들을 테니, 윤건도 노래를 좀 부르라고 누가 좀 전해줬으면 좋겠다.

 윤건의 <라떼처럼> 노래가 나올 때쯤 아이는 잠이 들었다. 비바람은 여전히 창문을 깰 듯이 퍼붓고 있었고 자동차 내부는 음악으로 가득 찼다. 바깥은 소란스럽지만, 차 안은 음악과 아이의 단잠이 있다. 이것이 평화다. 나의 내면도 외부의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늘 평화로 가득하길 바란다.

 슬리핑 로드에서의 성공적인 아이재우기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방에 눕힌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는 잘 것이다. 그러면 난 아이 옆에서 노트북을 펼쳐 들고 글을 쓴다. 아이를 재우는 도로 이야기나 차 안에서 들었던 음악에 관한 이야기 따위를 떠올리는 것이다. 어느새 방은 아이의 단잠과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글이 태어나는 소리로 가득 찬다. 육아에도 낭만적인 순간이 있다.


새벽 빨래의 낭만

 새벽에 깼다. 아이를 재우다가 깜빡 잠이 들었었다. 시계를 보니 4시를 조금 넘겼다. 어젯밤 아이들 빨래를 돌려놓았던 것이 기억난다. 세탁기는 벌써 제 할 일을 마치고, 몇 시간 동안이나 빨래를 속에 품고 있다. 아내가 알면 혼 날 일이다. 난 소리가 나지 않게 닌자처럼 움직인다. 재빨리 빨래가 있는 보일러실로 잠입해서 대야에 빨래를 담은 다음, 거실 빨래 건조대와 베란다 건조대에 나눠서 넌다. 임무를 완료했다. 새벽별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라도 훅- 뿜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빨래하기는 내 오랜 가사 일이다. 부엌일보다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맡았지만 아이가 둘이 되니까 이삼일이 지나면 빨래 감이 무더기로 쌓인다. 일주일이 지나면 빨래가 산을 이룬다. 등산 욕구를 불러일으킬 정도다. 매일 갈아입는 아이들의 내복과 속옷, 첫째는 어린이집에 다녀와서 겉옷도 매일 내놓는다. 거기다가 나와 아내가 내놓는 빨래 감까지. 아이들의 속옷은 우리들의 겉옷과 분리해서 따로 빨아야 한다. 일주일에 두 번, 많게는 세 번까지 빨래를 돌려야 한다.

 오늘처럼 빨래를 널지 못하고 잠이 든 경우, 새벽에 꾸역꾸역 일어나서 빨래를 너는 일은 고역이다. 빨래의 양에 따라 다르지만, 빨래를 너는데 20분 이상 걸린다. 빨래를 너는 삼 단계, 들고 털고 넌다! 아내가 곁에 있다면 이렇게 참견을 했을 것이다.

“한 번만 털어서는 주름이 다 펴지지 않아. 최소 세 번은 털고 널어야 해.”

 아내가 없는 지금 한 번만 턴다. 그 와중에 간섭 없이 한 번만 터는 자유를 누리며 큭큭, 웃음을 짓는다. 오늘의 빨래 양이 평소보다 적다는 것에 또 한 번 웃음이 난다. 언제부터였을까. 이토록 마음이 가난하게 된 것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꽃인 ‘팔복’의 첫 번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이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마음이 빈곤하다는 뜻이 아니다. 적게 가진 사람은 작은 것에도 쉽게 웃고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글은 분명 빨래 너는 이야기다.

 빨래를 다 널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5시 20분. 첫째 아이가 깨서는 불 켜진 서재를 찾아왔다. 아이는 옆에 내가 없으면 잠이 깨서 눈을 거의 감고 서재로 온다. 그러면 나는 아이를 번쩍 들어 안고 다시 아이 방에 와서 눕힌다.

 난 자리를 옮겨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아이가 잠 든 옆,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글이 태어난다. 지금 방은 아이가 내뿜는 생명의 숨결과 내 손 끝에서 태어나는 창작의 약동으로 가득 찬다. 동이 트고 나면 비로소 길가를 오가는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밤새 너 조용히 꽃 피웠구나!”

 내 인생의 어느 순간에 듣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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