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 essay] 안시성은 누가 지키나

kyslmate(65)
Published in
#kr
Words
475
Reading
3 min
Listen
Play
8y

안시성2.jpg
<사진 출처: Daum 영화>

 "선생님, 안시성 지킨 사람 누구예요? 조인성인가요?"

 반 아이가 기말고사 대비해 사회 복습할 때 이렇게 물었다. 난, 그래 당태종 박성웅을 상대로 동생 설현과 함께 싸웠지, 라고 대답할 뻔했다.

 내일이 기말고사다. 내년부터 우리 지역에서도 지필고사는 전면 폐지된다. (교육감의 성향에 따라 더 일찍 폐지된 곳도 있다.) 모레 치는 것이 마지막 기말고사다. 기말고사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2,3주 전부터 학원에서 주말도 없이 시험 대비 공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부를 안 하고 마이웨이를 가는 아이들에게도 압박을 주는 건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기말고사를 대비해서 복습도 하고 단원 평가도 다시 치니까 학급은 시험 일주일 전부터는 크리스마스 시즌 분위기 대신 시험의 긴장감으로 가득 찬다.

 지필고사 폐지가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 기대하고 있다. 지필고사가 폐지되는 대신, 수업 과정에서 아이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하는 ‘과정중심 평가’가 강화된다.

 이런 변화는 수업 방식의 다양화를 기대할 수 있다. 좋은 줄 알고도 자주 못한 다양한 수업 모형을 적용해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역사에 관련된 수업을 할 때 조사 학습, 역할극, 프로젝트 학습, 토의토론 수업 등의 학습자 중심의 수업 모형을 적용할 수 있다.

 안시성 전투에 관해서 누구는 양만춘이 되고, 누구는 당태종이 되어 역할극을 하면 아이들은 역사적 사실을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수업이 아닌, 역할극 같은 수업을 하려면 수업 시간이 더 많이 든다.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을 배우고, 친구들과 대본을 작성하고 역할을 나누어 역할극을 연습하고, 발표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수업에서 1시간 걸릴 것이, 2~3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조사 학습이나 다른 수업 모형도 마찬가지다. 그런 수업을 하고 나면 일단 아이들이 재미있게 수업할 수 있고, 수업 과정에서 사고력, 창의력 등을 기를 수 있지만, 수업 진도가 밀리게 된다. 진도야 교육과정을 적절히 재구성하여 맞춘다 해도, 더 큰 난관은 기말 고사다.

 학습자 중심의 수업 모형들을 적용해 수업하면 아이들은 즐겁게 공부할 수 있지만, '암기해야 하는 지식'을 묻는 시험엔 다소 취약할 수 있다. 그래서 기껏 수업을 하고도 시험 대비용 수업을 다시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사정이 이러니, 선생님들은 교대 4년간, 그리고 수많은 연수를 통해서 각종 좋다는 수업 모형, 수업 방법들은 다 배워서 알고 있어도 이를 적용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시험에서 요구하는 지식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수업 과정에서 사고력과 창의력을 아무리 길러준다고 해도, 그건 티가 나지 않는다. 지필 고사 결과 한 번에 다 덮이고 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이니, 가끔씩 새로운 수업 방법들을 적용하여 수업할 수는 있어도, 지필 고사가 살아 있는 상황 속에서 그걸 무시하고 매번 적용하여 수업하기란 어려웠다.


배우는 내용에 따라 평가가 달라져야 하는데, 시험에 따라 배우는 방법이 달라지는 현실

 지필고사 폐지에 대해 학력저하의 우려도 없진 않으나, 어차피 입시 제도가 달라지지 않는 한 중고등학교 가면 기를 쓰고 외우며 입시를 향해 달려가야 하니, 초등학교에서만큼은 과정을 중시하는 수업 위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 때 전국 일제고사가 부활했을 때 거부한 선생님들 징계 받던 시절도 있었는데, 학교 자체 기말고사가 사라진다니, 시대가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어쨌든 내일 기말고사를 쳐야 하니, 과목별로 복습 학습지도 함께 풀고 문제도 다시 풀어본다. 아이들은 시험 끝나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내년도 학기말의 교실 풍경은 꽤나 달라져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학습지를 풀며 안시성은 누가 지켰는지 기억해내려고 하는 대신, 직접 양만춘과 당태종이 되어 진격을 외칠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안시성을 지킨 사람이 조인성이냐고 묻는 일은 없겠지.

영감5.jpg

[Edu essay] 안시성은 누가 지키나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