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Daum 영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 멤버들은 후드 코트를 입고 밤마다 학교 기숙사를 나서 비밀 모임에 참여한다. 그들은 학교로 대표되는 틀에서 벗어나 위대한 시인의 시를 읽으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요즘 등교해서 아침 독서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우리 교실에 혹시 ‘죽은 시인의 사회’ 비밀 결사대가 결성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커먼 롱패딩을 입고 어두운 바위처럼 몸을 웅크린 애들의 모습은 기괴하기 이를 데 없다. 반 이상의 학생이 검은 롱패딩으로 전신을 감싸고 얼굴만 하얗게 드러내고 앉아 있다. 쉬는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온 가오나시가 생각난다.
비밀 결사대로 지칭하기엔 롱패딩을 입은 학생들은 이미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초, 중, 고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학교들을 접수해버렸다. 등굣길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가오나시의 행렬이 이어진다. 작년부터 이어진 롱패딩 열풍은 겨울철 대한민국 교육 현장의 상징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이들은 왜 롱패딩을 입을까. 롱패딩을 착용한 우리 반 열댓 명의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이유는 두 가지로 정리되었다.
“롱패딩에는 ‘나의 모습을 울타리로 감싸고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판단 받지 않겠다는 저항의 정신’이 담겨있어요. 그 정신에 동참하기 위해서 롱패딩을 입습니다.” 라고 말한 학생은 물론 없었다. 그렇게 말했다면 그럴 듯한 사회학적 분석으로 확장할 수 있겠지만, 이는 내가 지어낸 말일 뿐이고 아이들의 실제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다리까지 따뜻해서요.”
“다들 입으니까요. 안 입으면 뭔가 뒤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요.”
간혹 이런 대답도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사 왔어요.”
요즘은 모든 곳에 가오나시가 있다. (사진 출처: Daum영화)
다리까지 따뜻하니까 입었다는 대답은 그냥 하는 말이다. 애초에 ‘다리까지 따뜻하기 위해서’ 롱패딩을 사야해! 라고 마음먹은 애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리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이미 갖고 있다. 내복이라든가. 진실에 가까운 대답은 두 번째 얘기다.
안 입으면 ‘뭔가’ 뒤떨어지는 것 같다.
내 생각엔, 이 ‘뭔가’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다들 입으니까, 교복처럼 되어 버렸으니까, 안 입으면 뭔가 결핍된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뭔가’에는 서로를 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어떠한가도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나만의 것’ 하나를 가진 것보다, 모두가 가진 하나를 갖지 못한 걸 주목하는 사회임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즉, 누군가가 가진 독특함보다, 결핍이 없는 상태를 더 높이 쳐준다는 얘기다.
어떤 현상이든 단 하나의 관점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에게 롱패딩은 ‘해방’의 의미가 크다. 막상 입어보면 따뜻하고 좋은 ‘롱패딩’을 이제야 입을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받았다고나 할까. 주위에 입는 사람이 없을 때 롱패딩을 입는 이들은 유난스럽다는 취급을 받기도 했다. 농구 선수, 축구 선수들이나 입는 겨울철 아이템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근데 이제는 너나할 것 없이 입으니까 이 아이템을 마음껏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있다가도, 급히 동네 앞 마트를 가야 할 때 롱패딩 하나면 외출 준비를 끝낼 수 있는, 그 편의성을 누리게 된 것이다.
어찌됐든 아이들의 롱패딩 착용 의도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기존의 체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죽은 시인들의 수도사 코트와는 상당한 거리감을 보인다. 오히려 반대로, 가오나시 세계의 일원으로 동참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지우고 거대한 흐름에 섞이고자 하는 의도가 더 커 보인다.
웬만하면 (나쁜 의미로) 남보다 튀고 싶지 않고, 웬만하면 남들 하는 거 다 갖추고 평균적인 수준으로 보이고 싶은 한국인의 속성이, 등골브레이커를 거쳐 이어져 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작년, 유행의 초기에 나도 무난한 검은색 롱패딩을 하나 장만했다. 그때는 학급에 롱패딩을 입은 아이들이 둘 정도 있었다. 그 둘 중, 매일 나와 똑같은 롱패딩을 입고 오는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나의 롱패딩은 동네에서만 소비되었다. 이제는 다른 이유로 학교에 입고 갈 수 없게 되었다. 또 하나의 가오나시로 그 세계에 녹아들지 않겠다는 내적인 저항 때문이다. 이 유행의 불꽃이 잦아들 때까지 내 롱패딩은 나의 사적인 영역에서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