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거의 일주일 만에 글을 다시 올리네요. 새해에는 좀 더 책을 열심히 읽고 글도 꾸준히 쓰고자 했는데, 갑작스레 신변에 새로운 변화가 생겨서 작업들을 좀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새해가 벌써 열흘이나 지났는데 아직 소설을 한 권도 읽지 못했네요ㅠㅠ 그래도 논문들은 꾸준히 읽었습니다만, 그동안 읽은 논문들의 내용을 정리한 글은 다른 기회에 좀 소개하도록 하고, 이번에는 2017년이 끝나갈 무렵 아주 인상깊게 읽었던 소설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주로 추리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좀 특이한 소설입니다. 바로 '신흥종교'라는 이색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작품, [가상의례]입니다.
나름 잘나가는 도쿄도 공무원 스즈키 마사히코는 취미로 게임 회사의 스토리 라이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재능을 알아준 업계 인사인 야구치 마코토의 권유로, 마사히코는 덕업일치를 위해서 용감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전업 판타지 소설가가 되기 위해 게임북을 쓰기 시작합니다. 늦은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때려친 마사히코에 질린 아내는 이혼을 선언하지만, 창작열에 불타는 마사히코는 '구게 왕국의 비법'이라는 제목의 두꺼운 동양 판타지 풍 게임북을 완성하고야 말지요. 그러나, 원래 그의 책을 내기로 했던 출판사가 파산하게 되면서 마사히코는 한순간에 막다른 길에 몰리게 됩니다. 그에게 출판을 권유한 야구치 마코토를 찾아내 책임을 지라고 윽박지르지만, 마코토 역시 스캔들로 업계에서 쫓겨나 노숙자나 다름 없는 신세였죠.
앞길이 막막해진 두 중년 남성은 마사히코의 작업실에서 술에 취해 세상을 한탄합니다. 그러던 가운데, 갑작스럽게 TV에서 속보가 방송되기 시작합니다. 바로 9.11 테러가 일어난 것이죠. 이슬람교와 기독교라는 종교 갈등이 배경이 되어 이런 대형 사건이 터진 것이 아니겠냐고 횡설수설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반쯤 재미 삼아, 그리고 반쯤은 대박을 꿈꾸며 신흥종교 비즈니스에 나서기로 합니다. 마사히코의 게임북 원고를 참고하여, 티벳 불교의 교리를 어설프게 포장하여 '성천진법회'라는 거창한 이름의 종교를 만들고, 홈페이지도 만듭니다.
그런데, 이 어설픈 신흥종교의 홈페이지에 방문객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9.11 테러 이후 불안감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홈페이지에 방문해 방명록에 상담글을 올리기 시작한거죠. 마사히코와 야구치는 이런 상담글에 성실하게 답변을 달고,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만족한 사람들은 성천진법회 홈페이지를 여기저기 알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마침내 성천진법회에 직접 찾아와 상담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나오게 되죠.
마사히코와 야구치는 '대박'을 꿈꾸면서, 작업실 방을 빼서 상가 건물 1층에 초라한 '법당'을 만듭니다. 원래 여성 운동 단체의 상담실로 쓰던 사무실이 법당이 되면서, 상담실인줄 알고 찾아온 여성들이나, 홈페이지를 보고 찾아온 손님들이 하나 둘씩 늘어갑니다. 비록 신흥종교의 교주를 자칭하지만 전혀 종교적이지 않고, 오히려 이성적이고 성실한 타입인 마사히코는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이고 건실한 조언을 건네고, 감성적이고 사람을 잘 챙기는 야구치는 손님들을 따뜻하게 감싸게 됩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 가출 청소년, 우울증 환자, 성매매 여성 등 생활 속에서 고통과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일종의 '상담소'로서, 성천진법회는 점차 신도들을 늘려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느 중소기업 사장에게 건넨 조언이 우연하게 큰 성공으로 돌아오면서 성천진법회는 새로운 길을 걷게 됩니다. 마사히코에게 강하게 감회되어 버린 사장은 기업 소유의 연수원 건물을 새로운 법당으로 사용하라고 제안하고, 여러 금전적 지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사장의 인맥을 통해 점차 마사히코는 '키류 교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비즈니스'로 시작한 성천진법회는 정말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하고, 전국 곳곳에 새로운 법당을 만들며 세력을 확대하게 됩니다. 한편, 새로 성천진법회를 찾아온 중산층 신도들과 초기부터 성천진법회를 지켜온 젊고 사회에서 탈락한 신도들 사이의 갈등은 점점 커져 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신흥 종교 교단의 교주 '에코 호주'가 성천진법회와 접촉하게 되면서 성천진법회는 마사히코가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 속으로 말려들게 됩니다. 그리고 '신흥종교 비즈니스'는 만인의 지탄을 받는 '사이비'로 몰락하기 직전까지 이르게 됩니다.
[가상의례]는 600 페이지에 이르는, 상당히 두꺼운 양장본 책 상 하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간략하게 스토리를 소개했습니다만, 이 책에서 '신흥종교 비즈니스'를 그 시작부터 발전 과정, 마무리 과정까지 훑어가는 서술은 상당히 자세하고 구체적입니다. 왜 사람들이 신흥종교에 빠지게 되는지, 사회적 현상으로서 신흥종교 문제를 다루면서, '옴 진리교'와 같은 사이비 종교들이 어떻게 재계, 정계와 연관을 맺으면서 성장하는지 마치 르포 소설처럼 탐색하고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재미있는 지점은, 주인공을 '교주'인 마사히코로 설정함으로써 종교라는 것이 카리스마적인 교주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신도들의 조직과 헌금이라는 재정의 힘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마사히코는 종교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이성적인, 티벳 불교나 밀교에 관심이 많은 소설가 지망생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이비 종교인'이라고 하기엔 양심적인 사람이죠. 실제로 그는 '옴 진리교'나 다른 신흥종교들처럼 취급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신도들의 돈을 무리하게 갈취하지도 않고, 교주 본인에 대한 맹신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과도한 헌금을 부담스러워하고, 신도들의 신앙이 신비주의로 빠질 것을 우려해 혼내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불행한 신도들이나, 다른 신흥교단 교주들, 브로커들, 하이에나 같은 언론인들에 비해서, 마사히코는 너무나 '정상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작품을 읽으면서 마사히코에게 감정 이입하게 됩니다. 마사히코는 그냥 좀 소박하게, '교주'라는 칭호는 좀 부담스럽지만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고, 좋은 말 들려주고, 상담 잘 받아주면서 사람들이 그에 대해 만족하면 되는거 아닌가, 그리고 나도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으면 다행이고... 라고 생각하는 그런 성실하고 양심적인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신도들이 교주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사업가들은 헌금을 턱턱 내놓고, 교주 본인이 원치 않는다고 해도 억지로 주변 사람들을 교단에 끌고 오고, 교주에 대한 안좋은 언론 기사가 나오면 신도들이 제멋대로 몰려가서 항의하고... 도무지 신도들이 교주 마음대로 컨트롤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컨트롤 되지 않음'이 결국 마사히코의 소박한(?) 종교 비즈니스를 위기로 몰고 간다는 점이, '신흥 종교'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는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2000년대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버블 경제의 붕괴, '옴 진리교' 사건, 9.11 테러 등으로 혼란한 사회 분위기와 가부장제 아래서 고통 받는 여성들의 이야기, 토지, 미술품, 정치 로비 등을 매개로 한 브로커 경제 등등 2000년대 일본 사회의 문제들이 '신흥종교 붐'이라는 현상을 배경으로 세세하게 그려집니다. 한마디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경구를 그대로 소설화한 듯한 작품입니다. 좀 길고 두껍긴 합니다만, 시도 때도 없이 사건들이 터져서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구요. 시노다 세츠코의 작품은 처음 읽었는데, 다른 작품들도 매우 기대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