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로 인해 살던 동네에서 쫓겨나게 될 처지가 된 어느 철거민이 있습니다. 대책 없이 그냥 쫓겨나기 억울해서, 마찬가지 처지에 놓인 동네 사람들과 투쟁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누구의 이익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법과 공권력은 재개발조합의 손을 들어줍니다. 이대로 가다간 영락 없이 쫓겨나겠다 싶어서,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습니다. 찾다보니, 자신과 마찬가지로 개발 사업에 의해 쫓겨날 상황에 처해있는 철거민들이 모인 단체가 있다고 합니다. 단체에 가입해서 도움을 얻으려고 하니, 그 단체에는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상도동 사람이 철거 위기에 처하면 순화동 사람도 이를 막기 위해 모여야 하고, 용산이 철거 위기에 처하면 상도동 사람도 이를 막기 위해 모여야 합니다. 어차피 혼자서 싸울수는 없는 노릇이니, 단체와 함께 하기로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싸움이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니 좀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산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해서 모두 용산에 모입니다. 경찰과 용역깡패들이 강제로 밀고 들어올 수 있다고 하니, 건물 위에 망루를 쌓아 이를 방어하기로 합니다. 통신 일을 하는 철거민은 전선을 잇고, 건설 현장에서 일한 철거민은 비계를 설치합니다. 서로 돕다 보니 망루가 만들어졌습니다. 시시각각 이쪽을 살피는 경찰들의 눈치가 심상치 않지만, 오늘 밤 모두 용산을 함께 지키기로 하면서 밤을 지샙니다.
밤이 다 지나간 새벽 6시, 경찰은 불법 점거를 멈추라는 경고 방송과 함께 물대포를 쏘기 시작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경찰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철거민들은 항의하며 도로에 화염병을 던집니다. 어느덧 건물 옥상에 지은 컨테이너 망루가 물대포에 휘청이기 시작합니다. 경찰들은 크레인을 통해, 건물 옥상으로 경찰 특공대를 진입시키려 합니다. 용산 철거민, 순화동 철거민, 상도동 철거민 등 십 수 명의 철거민들은 컨테이너 망루 안으로 들어가 경찰에 맞서서 끝까지 버티기로 합니다. 경찰 물대포와 경찰 특공대의 진입 시도로 망루가 위태 위태하게 흔들립니다. 철거민들은 시너를 뿌리면서,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망루 안에 화염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철거민들은 갑작스러운 화염에 당황하여 오락가락하다가, 창문을 넘어 망루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십여분 만에 망루는 온통 불바다가 되고,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화재로 숨지게 됩니다. 다행히 망루를 벗어난 철거민들도, 부상 당한 상태로 경찰에 끌려갑니다.
철거민들과 경찰이 숨지고, 많은 사람들이 다친 이 사건은 '용산 참사'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검찰과 법원은 망루에서 일어난 화재로 사람들이 죽었고, 화재의 책임은 화염병을 준비하고 신나를 뿌린 철거민들에게 있다고 보았습니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발화를 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명확한 발화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검찰은 어찌 되었든 화재의 원인은 철거민들이 준비한 화염병에 있다고 보아, 용산 철거민과 다른 철거민들을 '공동정범'으로 묶어 기소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재판부에 받아들여져, 망루를 지키고 있던 철거민들은 중형을 선고 받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수년 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소합니다.
문제는 바로 이들 모두가 '공동정범'이 되었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단체의 지침에 따라 용산의 망루에 올랐다는 이유로 수년 간의 징역을 살게 된 철거민은 고통스러운 세월로 인해 삶이 망가졌습니다. 다른 철거민들과 함께 싸우는게 옳은 일이라고 믿고 용산으로 갔는데, 별 일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망루에서 밤을 지새웠는데 하필 경찰이 밀고 들어왔고, 화재로 인해 몸도 다치고 전과도 생겼습니다. 자신은 불을 지르지도 않았고, 오히려 화재로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화재에 대한 책임을 진 '공동정범'이 되었습니다. 경찰특공대의 이례적이고 갑작스러운 진압 작전이 아니었다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텐데 말이죠. 어쩌면, 사실 책임이라면 당사자인 용산 철거민이 책임을 더 져야할 문제일 수도 있는데, 왜 나까지 '공동정범'이 되야하는거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죄책감도 듭니다. 불길이 솟구쳐 오르던 그때,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창문을 넘어 뛰어나갔습니다. 워낙 급작스러운 상황이어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철거민을 밀치고 먼저 뛰쳐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서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때, 다른 철거민이 나를 도와줬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나를 도와줬던 사람은 오히려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죽고, 나만 살아남았습니다. 나를 구해준 사람은 죽고, 나만 살아났다는 죄책감이 괴롭게 밀려 듭니다.
용산 철거민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불길 속에서 죽은 아버지. 아버지를 놔두고 내가 제일 먼저 살자고 뛰쳐나온 죄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버지를 잃은 괴로움이 가시기도 전에, 구속되어 차가운 창살 아래 갇혀지내야 했습니다. 출소 한 후, 용산 참사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생계를 포기하고 뛰어다녔지만, 사람들에게서 이 사건은 점차 잊혀지기만 합니다.
영화 [공동정범]은 용산 참사 이후, '공동정범'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철거민 다섯 명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끝내고 출소했지만, 이들에게 세상은 '큰 감옥'일 뿐입니다. 죄책감과 후회, 원망과 불신이 이들의 삶을 여전히 묶어놓고 있습니다. 매일을 술로 지새우고, 잠자리에 누워 눈물 짓는 하루 하루가 계속됩니다. 시간은 점점 지나가지만, 진상 규명은 요원합니다. 서로에 대한 원망과 불신 속에서, 철거민들은 점차 멀어지고 갈등합니다. '그 와중에도 살려고 다른 사람들을 밀치고 나간' 사람에 대한 원망, '진상 규명을 위한 활동은 뒷전이고 매일 술이나 마시는' 사람에 대한 불신, '연대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내팽개쳤던' 자신에 대한 자책... 영화는 이들 철거민들이 겪었던 갈등의 시간들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사실 [공동정범]의 전작인 [두 개의 문]도 굉장히 이색적인 영화였습니다. 보통의 사회 고발적 다큐가 공권력의 남용과 그로 인한 피해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인데, '공권력의 강제 진압으로 인한 참사'라는 가해와 피해의 구도를 넘어서, 진압 명령을 받은 경찰의 입장에서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 바로 [두 개의 문]이었습니다.
[공동정범]은 한발 더 나아갑니다. 보통 권력에 의한 일방적인 피해자로 그려지는 사회적 약자의 피상적인 모습을 넘어, 피해자들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날 것 그대로 그려냅니다. [공동정범]의 주인공인 철거민들은 공권력의 폭압에 맞서 강철 같이 뭉쳐서 대항하는 '철의 철거민'도, 한 없이 선한 '완전무결한 피해자'도, 화염병을 투척하고 경찰에게 새총을 쏘아대는 '도시 테러리스트'들도 아닙니다. 이들은 그저, 무거운 책임에 짓눌려 방황하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그냥 '사람들'로 그려집니다. 그동안의 다큐에서 그려졌던 도식과 달리 철거민들이 서로를 향해 분노하고, 갈등하는 모습은 스릴러 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가슴 조여드는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다른 한편, 이렇게 날 것 그대로 생존자들의 갈등을 드러내는 것이 불편하다는 감정도, 정치적으로 첨예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불안한 감정도 느끼게 합니다.
[공동정범]이 '용감한 영화'라는 것은, 용산 참사와 같은 사회적 이슈를 다뤘다는 점에 있지 않습니다. 용산 참사의 생존자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개인적인 불신과 원망의 감정들을 끝까지 파고들어, 이러한 '개인적 감정'이 단지 개개인의 책임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들을 '공동정범'으로 묶어낸 법과 제도, 그리고 권력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 직시하도록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영화는 '순결한 피해자'의 서사를 부수고, '불완전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서 역으로 국가폭력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용산 참사'와 그 이후의 후유증들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다시 한번 환기하려 합니다. 위험하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조명한 감독과 제작진의 '용감함'과, 자신들의 불완전하고 치부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을 카메라 앞에 솔직하게 드러낸 생존자들의 '용감함'이 이 영화를 단순히 '용산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진영 논리와 조직 논리, 권력 구도의 작동 속에서 다양한 '피해 감정'을 느끼는 관객 개개인들이 자신이 느끼는 고통과 괴로움을 곱씹고, 구조의 문제를 직시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합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공동정범]은 단순히 특정한 사건에 대한, 그리고 어떤 시대에 대한 기록물을 넘어서, 어느 때라도 관객을 긴장시키고 자신의 문제들을 고민하도록 자극하는 '용감한' 영화입니다.
ps. [공동정범]은 지난 주에 개봉했습니다만, 관객 수가 저조한 듯 합니다. 평일 오후에 영화관에서 봐서 더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관객석에 저를 비롯해 다섯 명의 관객 밖에 들지 않았더군요. 놀랍고 굉장한 영화이고, 또 그만큼 보는 사람에 따라 서로 느끼는 것이 다를 수 있는 논쟁적인 영화라는 생각도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보았으면 합니다. 가능하면 리스팀을 통해서, 영화에 대해 더 알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사운드가 아주 훌륭한 영화라, 꼭 극장에서 봐야 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음향 작업에 공을 많이 들여서 그런지, 어지간한 상업 영화보다도 등장인물들의 인터뷰가 훨씬 또렷하게 들리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