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knowkorea 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졸업했는데요. 그 때 기숙사생활 및 학교생을 하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해 보려고해요.
제 주변지인들에게 큰 호응을 이끌었던 이야기인데, 과연 스팀잇내에서도 호응을 이끌수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포스팅해볼게요 ㅎ
미국은 고등학교가 4학년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를 합쳤다고 생각하면 쉽죠.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제일 인기가 좋은 음식은 바로 '라면' 입니다.
라면은 요리해먹기도 간단하고, 맛도 좋고, 해외에서 한국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닐까싶어요.
여름방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갈때, 캐리어(짐가방)에 반은 라면으로 구성되어있죠.
제가 좋아하는 라면 최소 20개. 그리고 각양각색의 라면들로 무장을 하고가야.. 배고플때, 또는 힘들때,
한국의 정서를 느끼면서 제대로 된 힐링을 할 수 있어요. 유학생에게 한국라면은 음식 그 이상의 의미에요.
(미국에서도 구매할 수 있지않나요? : 미국라면과 한국라면은 같은 브랜드라도 맛이 확실히 다릅니다. )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많은 미국인들 그리고 기숙사 생활을 하는 여러 국적의 학생들과 친해지기는 쉽습니다.
딱 기숙사에 도착하면, 반가운 얼굴들이 제게 인사를 합니다. 매일 같이보던 사이였는데, 방학으로 2개월동안 떨어져있었으니, 이야기할것도 많고, 같이 놀고싶은 마음도 공존하니깐요.
제 친한 친구들이 기숙사 제 방으로 놀러옵니다.
"Hey Yohan, what's good. How was Korea?"
"안녕, 요한, 잘 지냈어? 한국은 어땠어?" (제 영어이름은 Yohan 입니다.)
"Hi son, It was amazing."
"정말 좋았어" (친구들사이에 친근함을 표시하기위해 son(아들) 이라고 많이 부르죠.)
저와 친한 친구들은 알고있죠. 제가 한가득 라면을 가지고 왔을거라는걸요.
저랑 친한 스페인 친구 Luis 는 불닭볶음면을, 친한 멕시코 친구 Angel 은 진라면 매운맛을,
제 룸메이트이자 일본인인 Yuki 는 참깨라면을.. 이렇게 서로 제 캐리어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라면을 바로
알아보고 꺼냅니다. 학습의 결과이지요 ㅎ 한국어를 할줄 모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라면은 정확히 알고
찾아내는..
선물로 좋아하는 라면 1봉지씩을 줍니다. 그러면 그 친구들은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오늘 저녁에 끓여먹을거라고, 같이 라면파티를 열자고 말하죠.
이렇게 학기가 지나면 지날수록, 라면의 수가 점점 떨어집니다. 서랍 한가득을 채웠던 라면이 점점 떨어질수록, 제 마음도 허전해지죠..
저희 학교 기숙사는 밤 10시까지 자유시간이었습니다. 그 전에만 부엌, 그리고 거실 사용이 가능했죠. 그리고 10시가 지난 순간 모두 자기방에서 나오는것이 금지였습니다.
부엌이 닫기에 요리를 할수있는 시간이 한정적이고, 밤에 배는 고프고.. 그러면 제 친구들 한명씩 한명씩 제 방을 몰래 찾아오죠.
"Hey, Yohan, you got some noodle for me? I am starving. I will pay you."
"요한, 너 라면 지금 가지고있어? 나 정말 배고파. 라면 살게."
이렇게 5분 간격으로 라면을 사고싶은 친구들이 제 방을 방문합니다.
기숙사 내 자판기에 신라면이 있었지만, 이미 다른 진짜 라면에 맛들린 제 친구들은 신라면으로는 부족했을뿐더러, 자판기가 거실에 있으니, 거실까지 가지도 못하고.. 배는 고프고..
이렇게 저는 의도치않게 라면 암시장을 형성하게 되고, 얘들사이에 이런 말이 돌기 시작합니다.
"Yohan, the blackmarket"
"요한, 암시장"
저는 라면마다 등급을 매겨 한 봉지당 3~5달러씩 (한국돈으로 3000원에서 5000원) 밤마다 판매하기 시작했고, 그 모은 돈으로 계속 참고서 및 문제집을 충당했습니다.
자판기에서 사는 신라면보다 1.5배에서 2배이상 비쌌지만, 그들의 수요는 실제로 어마무시했죠.
맛있는 한국라면. 그리고 밤에 허기짐을 달랠 수 있는 야식.
결국 가지고왔던 라면이 다 떨어지게되고.. 많은 친구들이 안타까워했죠. 이 이야기를 저희 어머님께 말씀드리니..
어머님께서 라면 세네 박스를 미국으로 보내주시고, 저는 더 이상 돈을 받지않고 친구들과 함께 나눠먹었습니다.
지금도 라면을 보면, 유학당시 힘들었던 일들.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제 친구들,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추억들이 떠오르네요. 저에게는 라면은 음식, 그 이상의 의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