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낯선 사람에게 내가 무엇이지 소개하는 일이 어렵다. 전업 스티미언은 아닐 것이다. 너무 긴 설명이 필요하고 설명 끝에 내가 받을 시선도 곱지는 않을게 분명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인다고 새로이 사귀는 사람, 기존에 알던 사람 모두 내 직업이 무엇인가에 큰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 직업을 가지고 큰 편견을 가질 사람은 가까이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무언가에 매여 있지 않은 삶의 장점이다. 싫은 사람은 안 만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흥미를 위해 생각을 이어가본다.
직업을 물질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면 내 직업은 암호화폐 투자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행운이 실력이라 생각하거나, 그 행운이 영원할 것이라 믿을만큼 미련하지는 않다. 폭발적인 성장세가 멈추게 된다면 내가 가진 자본금으로는 삶을 지탱하기 위한 수익률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외에 물질적인 삶을 지탱하는 수단이 없는 나는 백수라 할 수 있다.
물질적인 삶이 아니라 정신적인 삶을 지탱하는 수단으로 본다면 전업 작가 내지는 스티미언이라 할 수 있다. 남에게 보여줄 목적이건, 나 혼자만을 위한 글이건 글쓰기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리고 글쓰기가 가진 장점을 여러가지 구절구절 늘어놓은 적 있지만 가장 큰 장점은 무언가에 전념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삶을 마냥 허비하고 있지 않다는 만족감은 아주 중요하다. 우울증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도 지목되지 않는가? 억지로 쓰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할 창구로서의 글쓰기는 정신건강에 아주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무수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질을 배제하면 우스워진다. 밥을 굶고 있었다면 글쓰기만으로 정신을 지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질을 배제하고 만족감을 주는 활동, 전념하는 활동을 업이라 칭하면 우스운 결과가 나온다. 전업 친구, 전업 아들, 전업 독자. 과연 사람들에게 이 호칭들이 어떻게 와닿을까? 전업 백수와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래서 업이라 내세우기 위한 활동은 물질을 낳을 수 있어야 한다.
2017년은 이런 해였다. 철저하게 분리된 물질적 만족감과 정신적 만족감.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현대인은 물질적 만족감과 정신적 만족감을 동시에 얻는 삶을 살기 힘들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대신 물질적 만족감을 얻고, 반대로 물질적으로 궁핍해지는 대신 정신적 만족감을 얻는다. 이를 더욱 가속화 하는게 인간의 본성이다. 과잉정당화 가설에 대한 Mark R. Lepper와 David Greene의 실험은 굉장히 유명하다. 외부적 보상이 주어지면 내적 동기가 감소한다. 돈을 받는 활동에 대한 내적 동기는 계속해서 감소한다. 따라서 정신적 삶과 물질적 삶 간의 괴리는 현대인만의 고질병이 아니라 인류의 고질병이다.
그렇다면 2018년은 어떨까? 글쓰기로 물질적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수익을 얻으면 정신적 만족감을 잃어버릴까? 나는 스스로 알고 있는 본성에는 무력하게 당하지 않는다는 오만을 품고 있긴 하다. 만약 글쓰기에 대한 태도가 변질되더라도 변질되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도 즐겁겠다. 자기관찰은 왜곡되기 쉽지만 즐거운 활동이다. 삶은 항상 예측을 벗어난다고 하니,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지 모른다. 그래서 2018년의 삶이 더욱 기대 된다. 나는 내년에 전업 무엇이 되며, 무엇으로 불리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