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작년에 국내 암호화폐 시장을 두고 일어났던 소동에 대해 알고 계실 것이다. 암호화폐 시장은 지나치게 과열되어 있었고, 무분별한 ICO가 쏟아져내렸다. 투자자 보호차원에서의 무언가는 필요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충분히 숙고하지 않았다. 어설프게 규제를 입에 올렸다. 규제, 폐지와 같은 단어들은 투자자들을 자극하기 좋았다. 투자자들이 과열되어 있다며, 과열된 투자자들이 규제안에 어떻게 반발할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자극적인 표현들로 화가난 투자자들에게 기자들은 기름을 부었다. 자극적인 단어들을 나열했다. 그래서 가뜩이나 가열된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졌다. 생산적인 의견조율은 불가능했다. 여전히 국내에서는 ICO를 진행할 수 없고, 동시에 해외에서 진행되는 사기 ICO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을 보호할 방법은 없다. 카카오에서도 해외에서 ICO를 진행한다니, 허울 뿐인 규제이며 국내 투자자들의 자금 흐름을 더욱 추적하기 어렵게 할 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WHO에서 게임중독(Gaming Disorder)를 질병(Disease)로 분류했다. 정신건강에서 이상이 있다고 분류하는 범위는 통제력을 잃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수준을 말한다. 일상생활이라는게 게임에 너무 빠져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거나, 늦잠을 자는 정도를 말하는게 아니다.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무너지고 사회성을 잃어버릴 정도가 되는 상태를 질병으로 분류한다. WHO에서도 대부분의 게이머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문제임을 밝혔다. 책임자인 Vladimir Poznyak도 술을 마시는 사람들 중 극소수만이 알콜중독에 해당하듯, 게임중독 또한 게이머들 중 극소수에 해당하는 문제임을 여러번 강조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대부분의 게이머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생략하곤 했다. 게임중독이 알콜중독과 동일선상에 놓였으며, 게임업계에서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보도하곤 했다. 이러한 기사들의 파급효과에 대해 예상하지 못 했다면 무능력한 것이고, 파급효과에 대해 알고도 자극적인 보도를 위해 생략했다면 기자정신이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어느쪽이나 바람직한 기자의 자세는 아니었다.
분명 게임중독에 시달리는 이들은 파국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통제력을 잃고 육체적, 정신적 건강강이 무너진다.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게임의 요소들은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도록 만들졌으며, 매출 극대화를 위해 기업들은 심리학자들을 고용해서 게이머들이 게임에 더 오래 남아있고, 더 많은 돈을 쓰도록 유도한다. 반대로 소비자 친화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게이머들에게 다가가기도 하지만, 지금 할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은 위험에 노출된 소비자들이 존재한다는 명확한 사실에 집중하자. 그리고 WHO에서 철저한 연구를 토대로 진단 매뉴얼을 제시하는건 일부 무지한 집단에서의 헛소리 같은 진단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소수의 중독에 취약한 게이머들을 보호하고, 적절한 처방을 유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게임업계의 반발은 밥그릇 지키기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게이머들은 자극적인 기사들의 도발에 넘어가서, 사실관계 확인 없이 분노하는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선, 똑같이 파국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하여 알콜중독과 게임중독을 동일선상에 두는건 큰 오해를 낳는다. 알콜은 애초에 남용되면 육체에 유해한 물질이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은 그렇지 않다. 비디오 게임에서 "게임"이 유해성을 가진다면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스포츠도 유해하며 "비디오"가 유해성을 가진다면 Gaming Disorder 대신 Digital Disorder라는 이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게임중독과 알콜중독은 이처럼 명확한 차이가 있다. 낚시에 빠져서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있지만 낚시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진 않는다. 간헐적 보상에 취약한 인간의 본성을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데 말이다. 인간은 왜 간헐적 강화에 더욱 큰 영향을 받을까?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착취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에서도 간헐적 보상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자극하는가를 이야기 했으니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게이머들이 인식에서 받은 고통도 크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가 다음 날에 몽롱한 정신으로 출근하는 사람, 밤새도록 영화를 보다가 다음 날에 직장에서 컨디션 난조를 겪는 사람, 밤새도록 게임을 하다가 직장에서 피곤을 호소하는 사람 중 누가 가장 좋지 않은 시선을 겪을까? 심지어는 게이머들 간에도 코어 게이머들을 루저로 보는 시각이 만연하다. 자신은 사교의 목적으로 가볍게 게임을 즐기는 사회적 "주류"에 속하고 코어 게이머들은 비생산적인 활동에 여가시간을 모조리 쏟아붓는 루저에 속한다는 시각을 흔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게이머들은 더욱 반발한다.
그리고 대중들은 사실관계 확인에 약하다. 대중들이 모조리 정신건강 전문가는 아니다. 우울증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정신이 나약한 사람"이라 비하하곤 한다. 최대한 중립적으로 대중들에게 다각도의 시각을 전달하지 않으면 추가적인 사회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가령,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되었다는 기사를 본 학부모가 게임을 즐기는 자녀에게 강압적으로 게임을 그만두길 강요하여 그 학생의 정신건강이 무너지면 그건 누구의 책임인가? WHO의 책임인가? 게임을 만들어 낸 게임사의 책임인가? 여과 없이 기사를 수용한 학부모의 책임인가? 비극에 책임소재를 찾아내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처음부터 예상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충분히 숙고해야만, 비극을 최소화할 수 있다.
대항하는 목소리 또한 어설프다. 게임업계에 의한 조직적인 대응은 외부에 자칫하면 밥그릇 지키기로 비칠 여지가 있다. 만약 게임업계에서 게임중독의 파급효과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게임중독이 알콜중독과 어떻게 다른지와 게임중독에 의해 삶이 황폐화 되어가는 취약계층에 대한 구제방안을 동시에 제시했다면 엄청난 설득력을 가졌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진정 게임은 완벽하게 무해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절충안을 제시하는 제스쳐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설득력은 크게 늘어난다. 신념에 반하는 절충안을 내세우는건 위선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용적인 측면에서, 어느 편이 게이머들의 인식개선과 삶의 질에 기여하는가를 고려하면 신념을 굽히고 현실적인 대안을 택할 필요도 있다. 의원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이 단지 게이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쇼를 하는게 아니라, 진정 게이머들의 삶을 이해하고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면, 철저하게 공부해야 한다. 게이머들이 게임을 왜 하는가, 기업들은 어떤 게임을 만드는가, 게임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가를 공부해야 한다.
인간에게는 텔레파시도 없고, 철저한 이성도 없다. 감정적이고 선동에 취약하다. 그래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섬세한 표현이 중요하다. 색체와 온도를 조율하고 최대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특히나 자신들이 공익을 표방하고 있다면 더욱 조심스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에서 본질을 망각하지 않도록 끊임 없이 검증해야한다. 게이머들도 자신들을 향한 인식을 이해하고 무조건적인 강한 반발은 차별을 강화할 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한다. 차별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이해하라는 말이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게이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분노를 쏟아내는 것인지, 자신들을 향한 부당한 시각을 거두는 것인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발화자는 수용자를 위해 표현을 조절하고, 수용자는 발화자의 의도를 읽어내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면 유토피아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생각이란 결국 언어와 문자의 형태로 전달되는 것이다. 언어적 능력을 키우는건 정말로 중요하다.
몇몇 분들이 기대하시는 게이밍 관련 포스팅은 제 게이밍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