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을 들을 때 곡 전체를 좋아하는 경우가 적다. 곡의 대부분을 좋아하더라도 아쉬운 부분이 꼭 있다. 전주는 정말 좋은데 나머지는 별로라서 전주만 듣는 곡도 있었다. 반대로 전주가 싫어서 한번도 듣지 않은 곡인데 우연한 기회에 중간부터 들었더니 너무 좋아서 놀란 적도 있다. 그리고 커버를 원곡보다 좋아하는 일도 잦다.
커버를 좋아하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원곡에서 아쉬운 부분을 커버 아티스트가 잘 메우기도 하고, 원곡과 다른 악기 편성을 좋아하기도, 원곡을 재해석한 곡의 색채 자체를 좋아하기도 한다. 보컬이 있는 곡의 경우 커버의 보컬을 더 좋아하기도, 커버에서의 연주가 보컬라인과 더 어울린다고 느끼기도 한다. 원곡에서 멜로디만 약간 차용했다고 할만큼 다른 곡도, 대동소이한 곡도 있다. 계속해서 이유를 찾자면 끝이 없고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는 나는 강요 받는걸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음악 뿐 아니라 다른 모든 곳에서 마찬가지다. 창작물에서 강요란 감상자에게 수용의 방향을 강요하는 것이다. 감상자의 삶에 따라 창작물은 다르게 다가간다. 누군가는 따뜻함을 느끼는 순간에, 누군가는 쓸쓸함을 느낄 수 있다. 두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창작자가 강요를 하면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다. 영화를 예시로 들면 가장 뚜렷하다. 영화에서는 감독이 "울어!"라고 강요하는 것 같은 장면이 있다. 나는 슬픔보다는 씁쓸함을 느끼는 장면에서, 감독이 나에게 슬픔을 느끼기를 강요하면 집중이 흐트러진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내 감정을 막는 순간에, 나도 더 이상 작품에 집중할 수 없다. 그래서 감정을 지나치게 발산하는 창작물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용은 감상자의 몫이다. 나는 내 나름의 감상을 품고 감상하고 싶다.
아마 회사의 영향이 강했을 것이다. 대중문화에서는 대중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편집 방향도 그에 맞추어 진행된다. 영화는 각본가, 감독의 의도에 맞추어 완성되지 않으며 음악은 작곡가의 의도에 맞추어 완성되지 않으며, 글 또한 작가의 오롯이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진행되지 않는다. 대중성을 가미하는 과정에서 오리지널은 흐릿해진다. 대중성을 얻기 위해서 작품에서 순수함을 비워간다. 유행에 맞추고, 팬들의 취향에 맞추는 사이 순수함은 사라진다. 그래서 생생함과 진솔함을 잃어간다. 꾸며낸 무언가가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커버 아티스트들에게는 강요할 누군가가 없다. 요즘은 커버 아티스트들을 관리하는 기업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렇게 관리 받는 아티스트들을 좋아하진 않는다. 그 기업들이 하는 일도 결국 대중성을 위해 순수함을 뒤트는 과정이다. 원곡부터가 대중성을 위해 순수함을 희생했는데, 거기서 더 대중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칼을 댄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다시 돌아가서, 많은 커버 아티스트들에게는 상급자가 없고 자유롭게 곡을 해석할 수 있다. 대중성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자신 있는 스타일로 곡을 다시 채색한다. 그래서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제각각의 색채를 담은 곡들을 모았음에도 하나의 색채를 형성한다. 커버한 아티스트가 자신의 스타일로 제각각의 곡들은 다시 채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곡은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듣지 않는 정도임에도, 커버는 즐겨듣는 경우까지도 있다.
문득 내가 정말 무례하고 오만한 감상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중성을 위해 순수함을 희생'이라고 했지만 창작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을 수 있다. 대중성은 고려하지 않은 창작자의 오리지널이 단순히 내 취향에 맞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함부로 창작자의 색채를 갖고 떠든다는게 얼마나 모욕적인가? 그리고 정말로 대중성을 위해 순수함이 희생된 경우라도, 그걸 원하는 창작자는 또 누구인가? 영화사들은 대중성을 위해 감독들에게 다양한 것들을 주문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장면을 주문하기도, 잔잔한 감정보다는 강렬한 감정을 전달하라는 주문을 하기도 한다. 이는 유명 감독들도 겪는 일인데 힘 없는 창작자가 어떻게 벗어나겠는가? 그들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글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 글의 주제와 논리는 그대로 두고 다른 작가가 글을 새로 쓴다면 어떨까. 그 글이 표현과 구조가 내 글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어떨까. 나는 내 오리지널이 있었기에 가능한 창작물이었다며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긴 힘들 것이다. 아마 비참함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