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설명이 없는 장면들이 좋다. 늘어지는 설명을 들으면 창작자가 만들어 낸 세상에서 인물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게 아니라, 인물이 작품 밖으로 나와서 수용자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와 다른 생각을 가진 수용자에게 원하는 바를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비록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제각각 고유한 수용능력을 가진 수용자들을 무시하는 행위, 내지는 타협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어, 나는 독백은커녕 대사 한 줄 없이도 인물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장면을 만날 때는 경외감을 느낀다. 멋진 장면을 보았다는 감동과, 나는 그런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없을거라는 자괴감이 함께 다가온다.
최근에는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인물이 자신의 문제를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반복되는 괴로움 속에서 무너지고, 결국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자신이 정신적 문제를 이겨내지 못 하고 목숨을 끊는 사람은 아니어야 하기에 자살이 아닌 사고사로 위장하는 장면을 대사 한 줄 없이 표현한 장면을 보았다. 이 작품에서는 사건의 순간 뿐 아니라, 사건의 전후에도 인물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지 않았기에 내 해석이 창작자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창작자의 목표가 생동감 있는 현실적인 인간이라면 해석이 제각각인게 자연스럽다.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반대로 독백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아무리 가까운 사람에게도 쉽게 꺼내놓지 않는 삶의 철학을 갖고 있다. 아무리 행동으로 나타내려고 해도 도저히 드러날 수 없는 그런 마음 속 깊숙한 곳에 머무는 철학이 있다. 이 경우에는 작품 속 인물 간의 대화에서 드러내는게 어색하기도 하다. 인물과 인물의 대화가 아니라, 창작자가 나에게 인물의 생각을 직접 설명하는 것 같은 기분도 느낀다. 그래서 꼭 인물의 철학을 밝혀야 한다면 독백이 적합하다. 혹은 간접적으로 수용자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적절한 상황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처음에 인물이 작품 밖으로 나와서 수용자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싫다고 했지만, 역으로 그 효과를 노리고 독백을 넣기도 한다. 수용자를 자유롭게 작품 밖에서 감상하도록 두는게 아니라 수용자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용자를 가르치려 들지는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간단히 창작물 속에서 독백이 좋다, 나쁘다를 가릴 수 있는건 아니다. 평소에도 대화 상대를 가르치려고 하는 인물이라면 수용자에게 가르치듯 말을 걸어도 이상하지 않고, 원래도 속에다 품어야 할 혼잣말을 구절구절 늘어놓는 인물이 혼잣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결국 다 부질 없는 이야기다. 그냥 잘 써야 한다.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