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무기력증을 겪으며 나는 망가지고 있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내가 즐기던 모든 활동들을 내려놓고 멍하니 있다. 나는 그 무기력이 나를 다 집어삼키고 어둠만이 남는 것이 두려워 억지로 밖으로 나가곤 한다. 밖은 안전하다. 아무리 기력이 없어도, 나는 역할기대에 충실하다. 내가 어떤 상태이건, 내가 해야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무가치한 하루를 연장할 뿐 나에게 닥친 본질적인 위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임시방편일 뿐이다.
무기력의 장점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끝도 없이 해치고 싶지만, 나에게는 스스로를 해칠 기력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공허함을 잊기 위해 술을 퍼마실 수도, 폭식을 하지도 않는다. 단지, 가만히, 정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그래서 내가 이 무기력을 이겨냈을 때 정신과 함께 기운을 내서 움직일 육체의 최소한의 건강이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물론 비교적 멀쩡한 육체에 비해 지성은 그렇지 않다. 독해 능력과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다.
이대로 침전하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이 나를 더욱 공허하게 만든다. 이것이 끝은 아니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계속해서 초조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이 이제는 끝이 나야 한다. 오늘로 끝이 날 것이다. 그렇게 다짐을 한 것도 이미 100번이 넘었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또 100번도 더 가졌던 확신을 다시 한번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