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들 하나하나가 권력자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권력자인 국민들이 원하는 바가 왜 실현되지 않는가? 간단하다. 권력자가 멍청하면 나라가 멀쩡할 수 없다. 왕의 눈을 속이는 간신배, 왕의 신뢰를 등에 엎고 나라를 망치는 간신배처럼 정치인들은 국민이라는 권력자들의 눈을 속인다. 멍청한 슬로건으로 경쟁한다. 그 간신배들이 제시하는 청사진을 요약하면 "국민들이 행복하고 나라에는 재화가 풍족하고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정치인들이 정의라는 키워드를 내세울 때마다 실소를 터트린다. 그들이 앞으로 할 행위가 정의와 상반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진정 정의에 대한 자신의 사상이 있었다면, 절대로 그 사상을 "정의"라는 한 단어로 축약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권력자들이 조금만 더 정의로움에 대해 사색할 기회가 있었다면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분풀이냐고? 그럴리가! 내가 말하는 판도는, 우리 앞에 선택지로 나선 후보들 중 그 누구도 후보가 아닐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정말로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들은 인기인이 되기 위해 노력할 시간이 없다. 과거, 내가 신뢰하던 몇 안 되는 충신 중 하나는 애써 쟁취할 뻔 했던 자리를 비전문가에게 넘겨주었다. 전문가라면 그 이상 가는 전문가도 몇 없을 터인데 자리는 "내 사람"에게 돌아갔다. 지연, 학연을 가지고 오랜 지기인 "내 사람"이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간신배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충신을 잃었다. 만약 권력자들이 관심이 있었다면 "내 사람"이 자리에 오를 일은 없었으며, 더 나아가 "내 사람"을 자리에 앉힐 간신배가 권력을 얻을 일도 없었다. 아, 너무 과열됐다.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나도, 여러분들도 불편할 뿐이니 여기서 마친다. 내가 특정 세력을 지지하고자 함이 아니라, 지지하고 싶어지는 세력이 나타나길 원할 뿐임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자본주의 또한 유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모든 개인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그 개인들이 모두 확고한 철학을 지니진 않았다. 왜곡된 민주주의와 연계되어 자본주의 또한 뒤틀렸다. 개인들이 원하는 세력이 아닌 자본이 원하는 세력이 살아남는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이 원하는 세력이 득세하는게 무슨 문제냐고 여쭈실 수 있다. 답하자면, 이상적인 자본주의에서는 개인들이 원하는 세력과 자본이 원하는 바가 이토록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 예시를 들어보겠다.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 기업이 있다. 엄청난 마케팅 비용, 정치세력과의 결탁을 통한 부정한 권력이 아니라 순수하게 상품으로 소비자에게 다가온 기업이 있다. 크게 성공하여 기존 기업들을 위협했다. 그리고 정치세력과 연계되어 있는 기존 기업들은 압도적인 자본과 정치세력의 힘을 등에 엎고 이 기업을 무너뜨렸다. 잠시 자신들의 점유율을 앗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시장에서 자신들을 쫓아낼 정도의 영향력을 키우기 전에 무너뜨린 것이다. 그리고 공작에 참여한 기업들 중 하나는 대중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다. 그 공작에 참여한 기업 중 하나가 인기를 얻은 방법을 알면 아주 우스워진다. 그들은 소비자 친화적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웠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기업이라는 평도 받았다. 만약 소비자들이 조금 더 관심 있었다면, 자신들이 좋아하던 기업을 어떤 방법으로 무너뜨렸는지를 알게 된다면, 정치권력과 자본세력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치권력을 만든게 국민이고, 그 국민들은 자본을 추종하는데. 착한 기업은 허상이다. 정말 착한 기업은 현대자본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내가 걱정되는건 여러분들이 특정 정치인, 특정 정치세력, 특정 기업을 유추해내는 것이다. 나는 그 주제로 논쟁하고 싶지 않다. 유추하지 말고 소설로 이해해주시라. 민주사회의 성실한 정치인에게 일어난 비극도 소설이고 자본사회에서 일어난 기업 간, 기업과 정치세력 간의 결탁과 신규 진입자의 처단도 소설이다. 있을 법한 소설인가? 아니면 완전히 허구이며 현실성이 떨어지는 소설인가?
광고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우리 주변 그 어디에도 광고가 있으며 그 광고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니까. 우리가 취약해서 이미지에 휘둘리기에 기업들은 광고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출하고, 이는 다시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우리가 광고에 휘둘리지 않는 확고한 소비철학을 가지고 있었다면 블로그 플랫폼은 오염될 일이 없었다. 리뷰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블로그 플랫폼이 타락한게 블로거들의 욕심 때문일까, 블로그에서까지 광고를 하려는 기업들의 문제일까 ,이를 방치한 플랫폼 관리자 때문일까, 그 광고가 소비로 이어지는 소비자들의 취약함 때문일까? 자, 세상에 순수한 블로거와 순수한 기업들이 가득하다고 하자. 블로거들은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으려 하지 않고 기업들도 순수한 블로거들이 소통하는 공간에서까지 광고를 하진 않는다. 단 1명의 블로거의 타락, 한 하나의 기업의 시도만으로도 이 평화는 무너질 것이다. 모두가 플랫폼의 가치를 순수하게 유지하고자 할수록 소수의 타락한 블로거가 얻는 수익은 어마어마해진다. 광고 효과도 마찬가지다. 모든 블로그가 순수하게 운영되고 있을 수록, 단 1명의 타락한 블로거가 창출하는 광고 효과가 커진다. 기업들에게는 이 순간이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개인들의 계몽이 필수적이다. 순수한 블로거들을 상대로 광고를 하는게 광고효과는 커녕 오히려 역효과만 낸다면 어느 기업이 광고를 하려 들겠는가?
나는 이를 대중들의 인간 본질에 대한 무지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예전에 '무섭고, 무서운 세상' 연재를 읽으셨던 분들은 내 사상을 아실 것이다. 읽을 글이 넘치는 지금의 스팀잇에 내 옛 글을 다시 링크하여 여러분들을 힘들게 하고 싶진 않으니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인간은 주체적인 의식이 있다고 착각하는걸 즐기지만, 외부의 영향에 엄청나게 취약하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뇌파를 측정하여 광고를 제작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마케팅 부서에 심리학자가 배치되는게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정치인들이 자유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를 어르는 부모의 양육부터 철저한 정신적 세뇌, 인간의 모든 활동은 그 사이에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의 법적인 한계에 대한 철학이 필요하다.
개인의 계몽 외에 다른 해결책은 무용하다. 자본주의에 반하여 중앙집권적 정치권력이, 소위 강한 정부가 도래해야 믿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과연 개인의 계몽을 거치지 않고 선출된 강한 정부가 휘두르는 권력이 진정 국민의 뜻을 이룰 것이라 믿는가? 아니면 국민의 선택과 무관하게 가장 우월한, 가장 사상적으로 위대한 독재자가 우리 사회를 끌고 나가기를 원하는가? 하지만 국민이 옥석을 가릴 눈이 없는데 어떻게 위대한 독재자의 뜻을 이해하겠는가?
참 무서운 사실은 내가 계몽을 요구하는 것도 하나의 세뇌에 속한다. 내가 계몽을 요구하는 이유도 내 사적인 이익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 수록 유리한게 분산화, 분권화의 핵심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내가 어떤 메세지를 담아도 순수하게 공익적 목적을 띌 수는 없다. 그래서 참 어려운 문제이다. 현자는 입을 다문다는게 괜한 소리는 아닌가보다. 나는 못 난 사람이라 오늘도 이렇게 지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