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군을 모시지 않고 초야에서 지내던 제갈량과 방통을 일컬어 와룡봉추라 부른다. 그들은 자신이 섬길 군주를 찾은게 아니라, 군주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에게는 프라이드가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뽐내기보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는 군주를 기다렸다. 자신의 위치와 관계 없이, 자신의 가치를 믿을 수 있었기에 그들은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와룡봉추와 같은 사람은 살아남기 어렵다. 능력 있는게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지칭하는 능력이 어떤 것인가는 화자에 따라 다르겠으나, 하고자 하는 일의 핵심이 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가에게 필요한 능력은 필력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능력 이외의 무언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사회에서는 인맥과 배경이 중요하다. 능력을 내비칠 기회라도 얻기 위해서는 인맥과 배경을 가져야 한다. 간혹 운이 좋아서 능력을 내비칠 기회를 얻는 사람도 있지만, 행운은 행운일 뿐이다. 정치력이 없고 순수하게 능력만 가진 사람이 성공하기에는 각박한 사회다. 백번양보해서 인맥을 만드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는걸 인정하더라도 배경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인맥을 만드는 난이도의 차이가 크다. 물론 태생부터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는건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당연한 일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당연히 세상이 그런 것이다."라고 인정하는 순간, 제갈량과 방통이 초야에 묻혀 지내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우연히 기회를 얻더라도 그들은 철저히 착취 당할 것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기에 그들의 업적은 모두 상급자의 공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 작가들은 필력을 늘리는 것에 전념하지 않고 "이 작가 글 좋아요."라고 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인맥을 쌓거나, "제 글 좋아요."라고 포장할 수 있을 능력을 쌓아야 한다. 아니, 이 선에서라도 머물러 주면 다행이다. 글의 가치가 아닌 작가의 이미지가 중요한 세상에서 "나는 대단한 사람이에요."라 내비쳐야 한다. 비단 글 뿐이 아니라, 그 어떤 분야에서도 타인의 능력을 온전히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알아볼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도 쉽지는 않다. 자신 밑에 들어온 신입사원이 자신보다 능력이 출중하다고 하여도, 이를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서 우연히 능력을 내비칠 기회를 얻어야 하며, 그 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입장을 보호할 필요 없이 전폭적으로 지지를 보낼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능력을 제대로 인정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와룡봉추들에게는 기회가 없다.
제갈량과 방통의 자리를 현대사회에서 찾자면 행정관에 가까울 것이다. 행정관은 능력만으로 인정 받는 자리인가? 행정관 또한 행정능력보다는 조직 내에서의 정치력이 중요하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다른 어느 조직보다도 더욱 조직 내 정치력이 필요한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행정관이 될 수 없다면, 그들은 초야에서 행정학을 연구하는데라도 매진할 수 있을까? 교수도 학문적 성취보다는 인기가 중요해지는 세상이다. 아마도 그들의 학문적 사유의 깊이와는 관계 없이, 그들의 사유는 인정 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종착역은 골방철학자다.
현대사회에는 수많은 와룡봉추들이 있다. 재능을 갖고 있지만 재능을 발산할 곳을 찾지 못 하고 떠돌고, 자신을 굽혀가면서까지 기회를 얻으려고 하진 않는 프라이드가 있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에게 "순진하다.",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평가를 하곤 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영원히 '세상물정을 모르고'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길 원한다. 그들이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라, 순수한 사람들로 여겨지는 세상이 오길 원한다. 그리고 순수한 사람들의 가치가 인정 받는 세상이 오길 원한다.
과연 이 곳은 와룡봉추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을까? 창작자들이 자신의 창작물을 포장하는 법을 배우는게 아니라, 능력을 키우는 것과 창작 자체에만 전념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