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촌스러운 노래를 틀어놓고 팔다리를 허우적 거리며 춤을 추는 남자의 이야기를 했었다. 그 남자는 몇년째 한자리에서 춤을 연습한다고, 하지만 거울을 보고 연습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자세를 교정해주는 것도 아니라서 동작이 영 엉성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는 춤을 추면서 그는 항상 자신의 발만 내려보고 있었고 누가 지나가는지, 누가 자신을 보는지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에게는 춤을 춘다는 사실만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최근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거나 새로운 취미를 찾았거나, 아니면 공기가 너무 나빠서 더 이상 밖에서 춤을 추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 사실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중요한건 그가 오래토록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뺏기지 않고 자신의 춤을 표현하는데 모든 신경을 쏟고 있었다는 사실 뿐이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연으로 그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신에 그 바로 옆 벤치에 새로운 남자가 보였다. 그 남자는 기타 3대를 세워놓고 기타를 바꿔가며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동행이 있어서 오래 듣지는 않았지만, 그 남자는 연주를 잘 했다. 하지만 노래를 참 못 불렀다. 가창력이 좋다, 나쁘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음치였다. 하지만 춤을 추던 남자와 마찬가지로 그 사실은 그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건 그도 춤을 추던 남자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기타만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이다. 동행이 말하길, 그 전날에도 거기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고 했다. 누가 먼저였던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둘 모두 저게 멋이라며 고개를 주억이며 다시 길을 걸았다.
나는 유독 그런 사람들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눈에 띄는 것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보다 더 눈에 잘 들어온다. 이것은 그들이 특이하기 때문일까? 만약 그런 사람들이 다수가 된다면 그들도 눈에 띄지 않는 보편적인 사람들일까? 내가 걷는 길에 그렇게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선 모습을 상상해본다. 나는 이제는 흔해진 그들에게 한순간의 시선도 보내지 않고 그냥 지나치게 될까?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는지 기억하지 않게 될까? 아마 그렇지 않다. 그들이 다수가 되더라도 나는 그들 하나하나에 시선을 보내고 그들이 행하는 자유에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그들 하나하나의 사연을 알게 된다면 그들을 더욱 오래 기억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앞을 지나가는 나의 역할은 항상 행인이고 싶으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카페에서 매일같이 같은 메뉴를 주문하고 같은 자리에 앉아서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내 모습은 어땠을까? 친구가 나를 만나러 카페를 와도 기다리라며, 그리고 다른 테이블에 앉으라며 보내버리고 자판과 화면, 이따금 허공을 쳐다보다 물을 뜨러가는 나는 어땠을까?
예전에 다니는 카페에서 일하던 점원은 자주 나에게 힘들었던 일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가 긁혔다며 소란을 피운 차주, 난동을 부린 취객, 가출 청소년,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 등 내가 직접 본 사건만 해도 한둘이 아니니, 하소연 할 사람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나도 같은 시간에 머무며 그 손님들을 봐왔기에 그의 말에 동조하며 위로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한번도 나에 대해 물은 적이 없다. 그건 예의였을까, 아니면 내가 먼저 말을 하길 원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산책로의 그들을 대하는 태도와 같은 것일까.
그전에 그 시간에 근무하던 점원은, 내가 가면 "라지로 드릴까요?"라고만 물어보았다. 주문을 마치면 진동벨도 주지 않고 내가 항상 앉는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한번은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흡연실을 다녀왔는데, 그래도 내가 항상 앉는 자리에 미리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그도 나에게 한번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단골손님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