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정심을 아주 높은 가치로 여깁니다. 강한 인간이라면 부화뇌동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감정적 혼란은 내면에서 그치며 밖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일체의 감정적 동요를 차단하고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훈련이 계속되니 감정적 동요도 그다지 없었습니다. 당신께는 죄송하지만 당시에는 슬프다는 감정이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당신과는 무던히도 충돌했습니다. 어릴 때는 좋은 기억도 많지만, 조금 크고부터는 계속 충돌만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당신에게서 내 어두운 면을 보았습니다. 내가 극복하려고 그토록 애를 쓰던 면을 당신이 계속해서 지닌 것을 보며 내 미래상을 엿보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저버리려던 면을 그대로 지닌 나를 보며 당신이 느꼈던 감정이 무엇이었을까요. 죄책감일까요? 당신이 싫어하던 사자성어가 생각납니다. 부전자전.
당신은 나를 강한 사내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병을 가진 나를 방치했습니다. 사내가 그정도도 참지 못 하냐고 계속해서 나를 몰아붙였습니다. 당신은 내 병에 대해서 알았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 했습니다. 어떻게 참았냐고, 어째서 이렇게 오래토록 방치했냐는 의사의 말을 듣고 당신은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둔감했던 덕에 나도 내가 병자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손해도 많이 보는 인간입니다. 당신 덕에 나도 손해를 많이 보고 삽니다. 당신은 애사심에 회사를 믿었다가 특허를 도둑 맞았습니다. 당신은 부하직원의 실수로 생긴 사고를 당신의 적금으로 덮어주었습니다. 이 건으로 가족의 삶에 굴곡이 생겼음에 당신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과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 둘 모두 속에 불을 품고 곁에 태양도 두었음에도 어찌 서로의 그림자만 보고 있었을까요. 우리는 웃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락과 째즈를 좋아하고 산과 바다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친구분들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당신을 추억하며 우시던 분도 계셨지만 저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감정적 동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마디에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친구분께서는 당신이 내가 택한 전면장학 입학을 이야기하며 우셨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내가 전면장학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자신의 탓이라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내 선택인데 자기가 왜..."하면서 무너졌습니다. 아니, 정말로 내 선택인데 당신이 왜 상관했습니까? 당신은 왜 그리도 스스로에게 엄격하셨을까요. 당신 탓에 나도 손해 보는 성격을 지니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내 약점입니다. 몇년간 감정적 동요 없이, 감정적 동요가 없는 척 살았음에도 당신을 추억하니 평정심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죄책감을 가지고 삽니다. 당신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트레스가 심장에 해가 된다는 연구를 접할 때마다 나는 이것이 꼭 내 탓인 것처럼 느낍니다.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무너진 것도 당신과 나의 유사성을 또 다시 절실히 느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실감하지 못 하던 나를 형성하는 절반의 상실을 실감한 것일지 모릅니다. 아마, 내가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실에서도 당신은 죄책감을 느낄 것입니다. 좋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모두 당신의 탓입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당신에 대한 죄책감을 접고자 합니다. 당신의 절반은 여기 살아있습니다. 아니, 감히 말씀드립니다. 당신의 개선된 반쪽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전 백일장에서 사용했던 그림이 여전히 어울리는 것 같아 그대로 이용합니다. 그림을 올리고보니 해당 심볼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나, 마음이 편치는 않네요.
글을 쓰며 감정적 동요가 컸습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감정을 되살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