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이들은 특정 범죄들은 죄질부터가 너무나도 흉악하며 인륜을 저버렸다고 합니다. 교화의 여지가 없으며 죽음이 합당하다고 합니다. 높은 재범률은 이들의 주장에 힘을 보탭니다. 흉악 범죄자들은 교도소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으며, 출소 이후에도 다시 죄를 저지릅니다.
반대하는 이들은 어떤 죄에도 죽음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야만인이 아니기에 함무라비 법전 식의 처벌은 옳지 않다고 합니다. 이들은 범죄자들이 처한 환경에 주목합니다. 불우한 유년기, 폭력적인 부모, 가질 수 없었던 교육의 기회,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등이 이들을 범죄로 이끌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전과자라는 낙인이 이들이 재범을 저지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형의 결과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반대의 주요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무고한 이들이 유죄 판결로 받은 고통을 돌이킬 수 없겠지만 사형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기회는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David Gale입니다. 지나치게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플롯이니 찾아보실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양측 입장 모두가 강조하는 것도 있습니다.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측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 강력범죄는 용서 받을 가치가 없다고 하며 반대측은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함을 지키며 재사회화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주요 쟁점은 이와 같습니다. 혹시 모르고 누락한 쟁점이나 틀린 점이 있다면 댓글로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그렇듯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회색분자입니다. 찬반의 논리 각각은 납득할 수 있는 주장이고 합당한 논리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목에 쓴 것처럼 '단순한 처벌로서의 사형제도'에 반대합니다. 더 나아가서 처벌로서의 형벌 자체에 반대합니다.
얼마 전에 이런 글을 썼었습니다. 해당 글에서 생각을 밝힌 바 있어 인용합니다.
저는 지독한 결정론자입니다.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성질이 인간성이라 한다면 인간성은 허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될 유전자를 가졌으며, 그러한 성품을 키워낼 수 있는 양육과 교육을 받았고, 좋은 사람들을 주변에 많이 두었을 뿐입니다. 동물들은 같은 종 안에서도 속이는 개체들과 속는 개체들이 나뉘곤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도 주로 거짓말하는 인간과 속는 인간이 있을 것입니다.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을 것입니다.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뻐꾸기가 진정 '나쁜' 새라고 할 수 있는게 아니라면 범죄자인 인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범죄자들의 처벌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범죄자가 될 유전자도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며, 반사회적 성향을 제공한 양육과 교육도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개인이 범죄자가 되는건 필연이라 생각합니다.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처벌 받는 사회는 평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차별적입니다. 우생학적이기까지 합니다.
인용한 글에서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통해 형성된 개인의 행동이 필연에 가깝다는걸 이야기했다면, 철학 이야기 #2. 인간의 의식에서는 환경에 따라 인간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실험들을 제시했습니다. 글이 조금 긴데 '결정론적 관점 하의 윤리'라는 소제목부터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편의를 위해 말씀드리면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복종실험,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포드 죄수실험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저는 처벌로서의 형벌 자체에 반대합니다. 처벌로서의 형벌은 두되 사형만을 폐지하자는 입장은 위선적이라 여깁니다. 물론 처벌이 재사회화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 찬성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범죄자에게 '나는 전과자다'하는 자의식을 강화하고 낙인을 찍어 바르게 살 수 없어 다시 범죄에 발을 들이는 처벌만으로서의 처벌은 반대합니다. 이러한 개선을 위해서는 사법기관, 입법기관의 노력 뿐 아니라 대중들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들과 같은 불우한 유년기, 결여된 교육의 기회, 범죄에 둘러쌓인 환경을 가졌다면 범죄자가 되었을 것이며 저지른 죄에 대해 법에 의해 심판 받았음에도 계속해서 낙인을 찍고 손가락질하며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없도록 환경이라면 재범을 저지르는 것 외에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회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이며 다시 사회에서 반듯하게 살아가는건 개인의 몫이라 한다면, 차라리
형량을 두지 않고 모조리 사형시키는게 위선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사회에서 형벌이 함무라비 법전처럼 야만적으로 처벌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습니다. 교도소 등의 시설에서는 이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치기도 하고 인성을 바로잡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합니다. 이토록 높은 재범률이 이를 증명합니다. 시민들의 안전이 달린 문제입니다. 위선 떨며 범죄를 용서하는 체 하지 맙시다. 이들을 사형시키지 않고 사회에 품고 갈 생각이라면 제대로 합시다. 불우한 과거와 폭력적인 충동에 시달리는 이들이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웁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는 말은 오래된 말이지만 그 통찰이 퇴색되지 않습니다.
평소처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통 모를 이야기를, 그것도 내가 제안한 주제에서도 벗어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는게 너무 즐겁습니다. 잠시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환기한 것만으로도 이토록 활력을 찾을 수 있다니 정신은 참 기이합니다.
여러분들도 단순히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나누고자 하는 생각을 나누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해 볼 거리를 주는 영상 2가지도 공유하고 싶습니다. 총격사건의 가해자의 어머니인 수 클레볼드의 TED 영상과 전과자인 말론 피터슨의 형벌 개혁에 대한 TED 영상입니다. 한글 자막도 있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상들이니 한번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글을 쓰며 몇달 전에 쓴 글을 다시 읽다보니 정말 열심히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초심을 찾고 재미를 잃지 않고 글을 써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