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D 보(Kathleen D. Vohs)와 조나단 W 스쿨러(Jonathan W. Schooler)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실험이 있다. 학생들을 나누어 각각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결정론,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글을 읽게 했다. 그 후 부정행위의 기회를 열어놓은 시험을 치르었다. 결정론에 대해 읽은 학생들은 부정행위를 했고,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글을 읽은 학생들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 자유의지의 실존과는 무관하게 자유의지를 믿은 것만으로도 자신의 인격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라 인지하며 자신의 인격의 품을 위해 노력한다. 반대로 결정론에 대해 읽으며 자유의지에 대한 약간의 의심을 품은 것으로도 행동에 변화가 찾아온다. 그리고 로이 F 바움에이스터(Roy F. Baumeister)와 E J 마시캄포(E.J. Masicampo), C 네이선 드월(C. Nathan Dewall)은 실험을 토대로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이들은 기꺼이 도울 의지가 줄어들고 공격성이 증대된다는 결론을 내었다. 이 실험들은 자유의지를 증명하지는 못 하지만, 자유의지가 허상일지라도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다면 도덕성을 유지할 의지 또한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결정론자들은 비관적이고 부도덕한 인간일까?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자신의 인격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인지하지 않는 결정론자는 기꺼이 자신의 인격의 품을 떨어뜨릴까? 한번 반대로 이야기해보자. 노벨상 수상자의 결정론에 관한 글을 잠깐 읽은 것으로 무너질 양심이, 과연 선함에 속하는가? 그런 양심이 과연 극단적인 상황에서, 정말로 양심이 필요한 순간에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양심은 그저 온실 속 난초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론자들은 악인에 대해 더욱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 악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이미 편향적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범죄자, 부도덕한 인간 등으로 해석하여도 좋다. 자유의지에 대한 신뢰가 있는 이들은 악인을 무엇이라 보겠는가? 악인을 자유의지에 대한 신뢰를 토대로 해석하면 스스로의 의지로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이다. 반대로 결정론자라면 악인을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악행을 저지른 인간으로 볼 것이다. 따라서 악인에게도 공감의 여지가 있으며 개선의 여지 또한 남아있다. 만약 명확한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면 사형 외의 형벌은 위선일 뿐이다. 인격이 자유의지를 토대로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라면, 변화의 여지가 없다. 재사회화란 외부의 영향으로 개인의 인격이 변화할 수 있음을 가정하고서 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결정론에 대해 읽은 것만으로도 행동이 바뀌었다면, 이것이 결정론의 증거이기도 하다. 외부의 영향을 긍정하는게 결정론이다.
이번에는 다른 사례를 토대로 해석해보겠다. 예전에도 인용한 적 있어 피니어스 게이지를 아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워낙에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바로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이다. 피니어스 게이지는 두개골이 관통당하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으나 건강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삶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온화하고 성실했던 그는, 어느새 다혈질에 불성실한 인간이 되어 직장에서는 해고 당하고 가족, 친구들에게 버려졌다. 자유의지가 실존한다면 피니어스 게이지를 어떤 인간으로 볼 것인가? 반대로 결정론에 따른다면 피니어스 게이지는 어떤 인간인가? 피니어스 게이지는 외상에 의한 것이라 차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결정론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결정론자들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정"론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일까, 결정론자들은 갱생의 여지를 부정하는게 아니냐는 오해가 잦다. 하지만 상기하였듯, 오히려 결정론이 갱생을 긍정한다. 범죄가 너무 극단적인 사례라면, 조금 더 일상적인 사례를 가져오겠다. 길거리에 널려있는 테이크아웃 일회용 컵들을 보셨을 것이다. 테이크아웃 일회용 컵들을 길거리에 버리는 이들은 문제가 있는 인간인가? 자유의지에 따른 해석은 그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토대로 해석하는 등 끊임 없이 사회문제를 거시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한다. 일회용 컵을 길거리에 버리는 모든 이들을 양심이 없는 사람으로 보는건 너무 비관적이기에 수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낙관적이다. 환경만 개선되면 개개인의 행동은 어렵지 않게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낙관적이다. 인간사회는 계속해서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인간은 변할 수 있다는 긍정에서 나온다. 그리고 결정론이 가장 극적인 변화를 믿는 이론이다. 흉악 범죄자조차도 갱생할 여지가 있다고 믿는 것이 결정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