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反省)이란 돌이켜 살핀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돌이켜 본다는 행위가 무얼 뜻하는가? 지나온 길을 되새기기 위해서는 현재에 머물러야 한다.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본다는건 과거로 돌아가서 그 길을 택한 것을 후회하고 뉘우치는 것과는 다르다. 당신은 당시에는 최선이라 생각하는 길을 택했다. 따라서, 당신이 지나온 길을 거슬러 간다면, 당신은 다시 또 같은 길을 택할 것이다. 그래서 반성을 위해서 우리는 철저히 현재에 남아야 한다. 내가 지나온 길, 지나지 않은 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현재에서야 뒤를 돌아볼 가치가 있다.
당신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격언에 따르지 않았던 것을 반성한다고 하자. 당신은 돌다리를 두들겨 보긴 커녕 성급하게 강을 건너기 위해 강에 뛰어들었다. 당신은 그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급한 결정이 나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당신의 성급한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선택 뿐만이 아니라 선택의 배경 또한 돌이켜 살펴야 한다. 당신의 등 뒤에서 야수가 어슬렁거리고 있다면 당신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 야수는 목이 말랐을 뿐일지도 모른다. 목이 너무 말라서 목을 축이기 위해 물로 가는 길에 당신과 마주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당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 한다. 그래서 당신이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한정 같은 선택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강을 건너 산을 올라서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본다면 어떨까. 산 꼭대기에 서서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당신에게는 실수가 많을 것이다. 물을 마시고 싶었을 뿐인 야수를 피하기 위해 강을 성급하게 건넜고 그래서 옷이 젖었지만, 실은 당신은 강을 성급하게 건널 필요가 없었고 강을 따라 걸었다면 튼튼한 다리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신은 성급하게 강을 건너고 산을 올라서 험한 산세에 얼굴과 팔은 긁힌 상처로 가득하지만, 알고 보니 그 다리를 건넜다면 곧바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잘 닦인 산길이 있었다.
이는 모두 당신이 산꼭대기에 있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당신은 다음에 같은 상황을 만난다면 공격의 의지를 표현하는 야수와 목이 마를 뿐인 배부른 야수의 행동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을 따라가면 다리를 만난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다음에는 여유를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당신의 선택을 후회하는건 앞으로 나아갈 지혜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나 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잘못에도 같은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타인이 죄책감에 무너지는 모습이 보고 싶은가, 아니면 지나온 길을 돌이켜 살펴 자신이 그 선택을 한 배경에 대해 이해하고, 다음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 바라는가?
죄인에게는 긍정적인 어떤 것도 주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다. 자신은 죄인들에게 분노를 표하는게 정당하고, 죄인들은 깊은 후회만을 갖고 죄의식을 지녀야 한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람의 정신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알고 있다. 부정적 감정을 깊게 가지고 있는 사람의 눈은 어두워진다. 그리고 눈이 어두운 사람은, 강을 따라 다리를 찾을 지혜도, 야수가 배가 고픈지 목이 마른지 구분할 지혜도 얻을 수 없다. 아마 그 사람은 같은 상황에 또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야수의 어슬렁거림을 추적으로 여기고 무작정 강에 뛰어들 것이다.
나는 강한 단죄를 요구하는 이들, 죄인의 삶이 완전히 황폐화 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차라리 죽여라."
강한 단죄를 요구하는 이들은, 죄인에게는 죽음조차도 사치라곤 한다. 그들이 편히 죽게 두어서는 안 된다며, 그들은 평생 속죄하며 대중들의 분노를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눈 먼 분노를 휘두르며 죄인에게 지혜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눈이 먼 죄인은 같은 실수를 할 것이다.
그들을 용서하라는게 아니다. 죄인을 이해하고 이타심을 내비치라는게 아니다. 이솝 우화에서 태양과 바람은 내기를 했다. 태양도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나그네에게 햇살을 내리쬐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죄인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그 삶을 버릴 지혜를 얻을 기회를 주는 것과 타인에게 고통을 준 죄인에게 같은 고통을 주는 것 중 어느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일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는, 죄인이 더 이상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 이기적인 선택은 죽여서 더 이상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게 하거나,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 것 뿐이다. 바람은 이기적인게 아니라 멍청한 선택을 한 것이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가 죄인에게 반성을 요구하며 파멸적인 후회에 몸을 맡기길 원하는 이유는, 우리부터가 과거를 통해 지혜를 얻는게 아니라 우울과 자책감만을 얻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나는 학생들의 반성문과 반성문을 대하는 교사들의 태도가 싫다. 나는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메세지를 담은 반성문은 반성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사과문이다. 반성이란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를 돌이켜보고, 자신의 실책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뉘우침과 사과는 자신의 선택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담긴 반성문을 '변명만 가득한' 글이라고 하는건 옳지 않다.
나는 우리 사회가 진정 이기적인 사회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죄인에게도 지혜를 허락할 정도로 이기적인 사회가.
@zzoya님의 그림작가 & 글작가 콜라보 이벤트 투표기간입니다. 링크한 글에 모든 출품작들이 링크되어 있으니 기존에 출품작들을 살펴보지 않으셨던 분들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