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려서부터 병원을 자주 갔습니다. 어릴 땐 왜 어금니가 빠진 일로 지방에서 서울까지 가야했는지 몰랐습니다. 왜 자다가 코피가 났다고 대학 병원 응급실에 가야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그런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저 그런건 아니더군요. 저는 유전으로 인한 희귀난치성질환자였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그저 평범한 아이로 키우고 싶으셨습니다. 당신들의 바람처럼 저는 저 스스로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저에게 어쩌면 후유증이 클 수도 있지만 학교에서 체벌을 피하기 위해 질환을 이용한 적도 없습니다. 체벌의 정당성 이전에 다른 학생과 다른 차별적 대우를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학교에 알린 적도 없었습니다. 한번씩 치료가 필요하더라도 주말까지 기다렸습니다. 의사가 왜 이리 늦었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저는 항상 당당했습니다. 저는 운동도 좋아했습니다. 활발하여 거칠게 놀다가 크게 다친 적도 많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순간들이 있을 정도로 크게 다친 적도 많지만 한번도 두려워한 적 없으며 타인에게 내 질환을 배려하길 바란 적 없습니다. 알리지도 않거나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알리더라도 절대로 차별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몸을 사리지 않고 다치면 치료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이기에 타인들도 금새 걱정을 거두고 동등하게 바라봅니다. 배려와 차별은 다르지만 한국사회에서 배려는 곧 차별로 이어짐을 알기에 이것이 최선입니다.
이는 굉장히 큰 불편을 끼치는 질환을 앓고 계신 분들께 굉장히 배부른 소리입니다. 저는 약만 있으면 증상을 크게 완화시킬 수 있는 질환이라 가능했던 일이지만 많은 분들이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어도 질환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를 밝히는 이유는 일상에 지장을 끼치지 않더라도 국가적인 차별이 만연해 있다는걸 밝히기 위함입니다. 일상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고통 받는 분들이 국가적인 차별의 대상이기까지 하다면 얼마나 괴로울지 저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평생 긴 절차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조금만 절차가 복잡하다면 마음이 크게 불편하여 쉽게 다가가지 못 합니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불필요한 절차를 거쳐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선 저는 제 질환과 저에게 필요한 약품, 필요한 용량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이 약품은 해당 질환에만 이용되며 신경성 약품 등이 아니라서 오남용의 위험이 있는 약품도 아닙니다.
하지만 쉽게 처방 받을 수 없습니다. 원칙이 그렇답니다. 같은 질환을 가진 친구가 미국에 삽니다. 필요한 양을 집으로 보내줍니다. 그 친구는 병원에 갈 필요도 없이 집에서 처방 받은 약을 복용합니다. 환자와 가족들이 필요한 약품, 필요한 용량, 복용법에 대해 아는데 굳이 병원을 갈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나는 병원에서 수시간을 보내고 또 다시 검사 비용도 청구 받습니다.
나는 아직도 소아과에 갑니다. 해당 질환에 대한 경험이 있는 의사가 소아과에 계셔서 나는 소아과를 갑니다.
저는 국가에서 의료비를 환급 받은 적도 없습니다. 절차가 더럽고 혐오감이 들어 한번도 청구한 적 없이 비싼 병원비를 오롯히 제가 부담합니다. 만약 환급 받고 싶다면 보건소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각각 다른 문서를 병원에서 발급 받아 제출해야 한답니다. 둘 모두 대한민국 보건복지부에서 관리, 감독하는 기관 아닙니까?
내 돈 내고 치료 받는 것도 부당한 대접을 받습니다. 심지어 저는 가지고 있는 질환 외에는 완벽하게 건강하여 따로 병원을 찾지도 않습니다. 해외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편의성과 약효가 더 좋은 약물이 공급되는데 국내에는 집단들의 이권다툼 속에 낡은 약물이 공급됩니다. 심지어 제약회사가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 하고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 훨씬 싸게 공급하겠다고 나섰지만 무산되고, 결국 이는 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에 있는 녹십자를 거쳐 부분적으로 유통됩니다. 최신 약품을 수입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20년이 지난 약품이며 해외에서는 훨씬 발전된 약품이 유통됩니다. 병원 한번 갈 때 수십만원씩 지출하면서도 이처럼 부당한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혈액검사 비용으로 10만원씩 추가로 부담하는 것도 충격적이죠. 환자들의 유전자가 갑자기 바뀌기라도 한답니까?
심지어 만 26세 이상의 환자들은 건강보험급여 혜택에서 제외하기도 했습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이를 서로의 탓만 하며 환자들의 고통에서 등을 돌렸습니다. 만 26세 이상의 환자들은 차별 받아도 됩니까? 심지어 만 26세에 대해 이런 위헌적인 차별적 결정을 하고도 만 26세 미만의 환자들이 좋은 대접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유시민은 감히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에 의료수급 제도의 실패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만약 정말로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다 하여도 이를 관리, 감독하기 위해 존재하는게 보건복지부 아닙니까? 예산만 배치하고 병원에서 요구하는데로 의료비를 지불하라고 있는건 아닐텐데요. 사실 면면들을 살펴보면 병원측에서 수급자의 지원금을 부당하게 취하려고 환자에게는 의료비 지원대상이 아니라며 비용을 청구하고도 국가에 다시 청구하거나 실시하지 않은 의료행위도 청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약국 또한 병원과 연계하여 과도한 처방전을 통해 약을 제공하고 이를 다시 국가에 청구하였습니다. 환자와 결탁하여 과도하게 처방 받게 한 후 환자와 국가에서 타낸 지원금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의 판단력이 부족한 것을 이용하려는 병원과 약국이 과도하게 진료를 하고 약을 처방하고 이를 국가에 청구하기도 하였습니다. 막상 의료급여 대상자 중 20% 이상은 의료비가 부담이 되어 치료를 포기하기까지 하였으니 얼마나 허술한 제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의료 쇼핑'이라는 말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는 건강에 이상이 없음에도 하루 일과처럼 병원과 병원을 오가며 물리치료 등을 받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들은 의료수급 제도의 대상자가 아니며 국민보험 대상자지만 건강보험 적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 또한 수급자와 공급자가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지만 굳이 의료수급 대상자를 지적하며 이야기한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견물생심이라 하였습니다. 부당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사람에게는 유혹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국가는 제도를 만들고 부당이득의 가능성을 제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각지대에서 부당이득을 취하는 이들을 심판해야하구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구성원들은 이를 위해 국민들로부터 임금을 받는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서로 이권다툼만 하며, 책임을 국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이 무슨 행태입니까.
노동청에서 쓴 글을 읽고 크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입사지원서에서 '병역 면제자는 이를 기술하고 간략히 설명'하랍니다. 물론 업무에 지장이 있다 하여도 태생을 그리 태어난 것이 무슨 죄라고 차별의 대상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업무에 지장이 없음에도 이를 서술해야합니다. 미안하지만 나라도 살고 싶어서 업무에는 지장이 없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그렇다고 차별적 시각은 거두어지지 않습니다. 인사담당자에게 저는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6급 면제 판정을 받은 희귀난치성질환자'로서 업무에 지장이 있을 사람입니다. 저는 평생을 병역 면제의 그늘 하에 살아야합니다.
취업포탈 사람인에서 조사한 결과 인사담당자의 88.6%는 병역이 실제 업무에 영향을 끼친다 여겼고 87.1%는 병역이행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기업의 90.6%는 군필자를 선호한다고 답하였습니다. 저는 물론 병역시행에 더욱 많은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음을 희생한 댓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혜택이 면제자에 대한 차별적 시각으로 인한 상대적 고평가는 아니어야 합니다.
심지어 저는 신체검사에서도 약만 제대로 공급된다면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으니 병역에도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병무청에서는 6급을 주더군요.
내가 사는 국가는 하나인데 국가에 내가 질환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몇번이나 문서를 보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료가 부실하여 처리가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내야 할 기관이 너무 많습니다. 공무원들을 싸잡아 비판하고 싶은건 아니지만 공무원은 이토록 많은 국가에서 이처럼 수준 낮은 행정이 이루어진다는걸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이와 같은 행정부의 태업은 보건복지에 한정된 것은 아니겠지요. 넓은 분야에 다양한 문제가 있을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득표와 관계 없는 소수는 무시합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갑니다. 여론에 영향을 끼치는 다수의 비위만 맞추면 됩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그토록 후안무치하던 이가 어느새 인문학자로서 친숙하게 대중들에게 소개되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두렵습니다.
행정의 부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다 제 삶에서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하게 되었네요. 요즘 참 제 나체를 많이 드러냅니다. 그만큼 이 곳이 편해졌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