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을 내세우며 여성을 억압하는 차별적 시각을 규탄하기에 앞서, 진정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해야합니다. 아동과 함께 보호의 대상으로 남는다면 '여성은 약자'라는 차별적 관념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장애를 가진 이들이 받는 대접을 보아도 비슷합니다. 신체가 불편한 이들을 어린 아이처럼 대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을 향한 목소리 톤부터가 아이를 향한 그것과 같습니다. 배려의 대상, 보호의 대상로 여겨지는 순간, 약자가 되고, 동등한 상대로 남을 수 없습니다. 이는 여성만이 겪는 남성의 억압이 아닙니다. 여성도 자신보다 약한 여성, 자신보다 약한 남성에게 같은 시각을 내비칩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보호의 대상'을 약자로, 동등한 대상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관념입니다. 하지만 역사에 걸쳐 형성된 우리의 관념이 그리 쉽게 변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 자식조차도 동등하다 여기기 힘든게 현실인데, 어찌 타인을 동등히 여기는 시각이 한순간에 형성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지금은 여성은 보호의 대상이라는 관념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건전한 여성인권단체라면 여성은 약한 성이라는 차별적 시각을 의도적으로 강화시키며 이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이들을 규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들이 여성의 인권에 오히려 해가 됩니다. 가령, 자신이 출석하지 않아 낮은 학점을 받고 교수 앞에서 구구절절 사연을 이야기하며 울어버리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교수가 가진 차별적 시각, '여성은 약자, 배려해야 할 성'이라는 시각에서 기회를 본 것이지요.
분명 육아 휴직도 필요하고 경력 단절에 대한 보완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는 여성에 한정된 것이 아닌, 우리 사회의 문제입니다. 기존의 역할구분에서 벗어나려면 남성에게도 육아 휴직이 보장되어야 하며 군복무를 통해 단절된 학업에 대한 보완 또한 필요합니다. 여성이 받은 억압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으며, 지금도 일어나는 일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여성이 받은 차별이, 역차별을 불러일으키는 정책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특히 그 역차별의 혜택을, 자신의 성별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소수, 오히려 여성이 약자임을 부각시켜 이익을 취하려는 소수만이 취한다면 이는 여성계에서도 나서서 규탄해야 할 정책입니다.
다른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과거에 불임인 부부를 돕기 위한 수단으로 생명공학이 대두되었을 때 여성계에서는 인공수정 등에 대해 크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여성은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입장이었지요. 하지만 불임인 여성이 받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연구가 이루어지고부터 인공수정 이슈에서 한발 물러섰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남성과 여성은 분명 다릅니다. 모성애와 부성애가 같을 수는 없나 봅니다. 따라서 우리의 지향점은 동일함이 아닌 동등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성 징병제 또한 동등함의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비록 여성들 중에도 보편적인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월등한 이들이 있으나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여성과 비교한다면 남성이 신체적으로 근력, 지구력이 강하다는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여성 전원이 지금 남성이 배치되어 있는 모든 병과에 배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훈, 행정, 인사 등의 업무는 충분히 복무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신체적 조건이 맞지 않는 여성들은 남성과 같이, 사회복무요원 등의 대체복무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동등한 복무를 통해 휴전 중인 국가에서 젊음을 국가에 바치는 것에 대한 양성 간의 공감대를 확대시켜 성대결 구도를 완화시키리라 믿습니다.
"남자는 멍청해.",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철이 들어."라는 말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계속해서 약자를 자처한다면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자신을 향함을 잊지 맙시다. 신체 건강한 당당한 자유인이, 약자를 자처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이제는 어르신들도 신체건강한 당신을 왜 약자 취급하냐는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