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을 추모하는 일에 서투르다. 아니, 정확히는 죽음에 대한 추모를 떠나서 상투적인 표현으로 감정을 나타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투적인 표현에도 진정성이 있을 수 있다, 없다 하는 문제가 아니라 상투적인 표현을 "하는 이 없는 말"로 여긴다. 나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 내 마음에는 들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과는 관계 없이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말이 소중하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도 "하는 이 없는 말"보다는 "듣는 이 없는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특히 죽음을 추모하는 일에 있어서 이것이 부각되는 이유는 상투적인 표현들 중 특히나 죽음을 추모하는 상투적인 표현이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도 참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상투적인 표현에서도 위로를 받는 사람이 많고, 상투적인 표현에 진심을 담아 전달하는 사람도 많다.
범죄의 처벌보다 예방과 재사회화에 집착하는 내 성향과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기에, 나는 예방과 재사회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는 결정론자이다. 본성 대 양육, 그 어느 쪽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둘 모두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다. 부모를 결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전히 인과관계는 모르겠으나, 내가 상실을 대하는 과정도 이와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 공감을 통해서 감정을 해소한다는 이들도 있으나, 나는 공감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내 감정을 이해하는 듯 이야기하면 기분만 나쁠 뿐이다. 그래서 남의 아픔을 아는 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다루는 주제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이야기지만, 아주 친한 사람이 연인과 결별했음에도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다음 날 동창을 만났다. 동창 중 하나가 뺑소니로 목숨을 잃었다.
"그 개새끼 빨리 잡아야하는데."
예방과 재사회화가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이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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