韩国一百年前娇妻美妾, 구한국시대 처와 첩

kimyounga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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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장하는 구한국시대 원본 사진입니다.
당시에는 경제적 능력이나 벼슬이라도 가진 양반정도 되면
대부분 본처 외에도 첩과 같이 살던 시기라서 시대적 상황상 사진의 두 여인은 처와 첩이 아닐까하고 추리한 것입니다.
국가의 국왕도 왕비만 데리고 살았습니까?왕비 외에도 빈이라는 여러명의 첩과 같은 개념의 여인들과 살았습니다.
둘다 아내와 같지만 처는 법적인 정부인이고 첩은 그보다 격이 낮은 부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능력만되면 첩을 여러명 두어도 합법적인 시대 였습니다.
그런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는 일제시대에는 불법적으로 되었으나. 실제로는 존속되었고
심지어는 광복후에도 과거만큼 은 아니지만 존속되기도 하였습니다.
60년대까지도 일부에서는 첩을 두는 사람도 있었다고 들은 바 있습니다.
두 여성중 누가 정부인이고 누가 첩일까요. 왼쪽보다 아기를 안고 있는 오른쪽 여성이 젊습니다.
첩은 대부분 정부인보다 젊은 여성이 선택됩니다. 그러므로 오른쪽 여성이 첩일 가능성이 큼니다.
정부인과 같이. 첩도 남편의 자녀를 출산도 하였습니다.

사진 143.jpg

사진 144.jpg

일부다처제는 제 생각으로는 아마도 어마무시한 과거에는영아 사망률도 높고 농경사회이고 전쟁이 빈벌하고 모든 인력이 절데적으로 부족하고 인력이 절데적으로 필요한 시대에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 발생한 정책이 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이 있어야 농사짓고 전쟁할 수 있겠죠. 그렇지 못하면 국가가 소멸되어버리는데요.
수천년전의 그 정책이 근대까지 이어져 왔을 것입니다.
1명의 부인보다 여러명의 부인을 합법화. 허용 시켜주면 출산률이 높아지잖아요.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피임이 잘 되어 있는것도 아니고. 생기면 생기는데로 다 낳아야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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