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에 가입한 건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전에 가끔 봤던 코인 관련 글의 출처가 스팀잇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때는 솔직히 말해 스팀잇 자체를 코인러들이 모인 커뮤니티 정도로 오해했었다. 아마 주로 coinkorea 태그가 달린 글들이 steemkr.com을 통해 내게 노출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스팀잇을 다시 찾게 된 건 @granturismo 그란투리스모님의 세그윗2X 잠정 중단 예측글을 통해서다. 이후 그란투리스모님의 글과
@noctisk 백화선생님의 글을 읽으려고 하루에도 두 세 번씩 스팀잇을 드나들었다. 그러면서 차츰 스팀이 뭔지, 보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곳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블록체인으로 돌아가는 SNS라니.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직접 체험하는 것만큼 빠른 길이 없다. 그래서 가입 신청을 했는데 뭘 또 승인을 기다리란다. 얼마간 기다린 끝에 비번 키를 받고 활동을 시작했다. 첫 포스팅은 사진이었다. 가입을 준비하던 단계부터 사진만 포스팅하기로 이미 마음을 먹고 있었다.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작품이든 신변잡기든 사진 외에 다른 걸 올릴 생각은 없었다. 그때는 kr 커뮤니티도 몰랐고, 알았다 해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글을 쓰는 직업이라 온라인에선 어지간하면 글쓰기를 피한다. 제목 짓는 것도 간신히 할 정도로 피로감을 느끼는 탓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한 번 남긴 글이 영구 박제된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나는 항상 내가 쓴 글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책임질 수 있는 글만 써 왔다. 거꾸로 말하면 책임질 수 없는 글은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종의 직업병인 이것은 차라리 아무말 대잔치가 더 유리할 수 있는 소셜 활동을 극도로 제한한다. 자기 검열이 병적인 수준이 된다. 내 직업을 아는 사람들은 맞춤법, 띄어쓰기 하나까지 더 신경써서 내 글을 본다. 국립국어원장도 틀리곤 한다는 띄어쓰기나 맞춤법을 온라인에서까지 지적 받는 건 소명의식이 100% 채워진 상태라도 피곤한 일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온라인에선 다소 위축된 포스팅을 한다. 그런 내게 사진은 좋은 도구다. 갤러리 큐레이터에게 작품 전체를 설명할 때만 빼면 각각의 사진에 의미 부여와 해설을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스팀잇에는 사진 컨테스트와 이벤트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사진을 올리기 시작한 뒤 운 좋게 내가 입력한 해시 태그를 타고 컨테스트 관련 봇이 와서 보팅을 하고 댓글을 달아주고 갔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컨테스트에 참여하며 지속적인 스팀잇 활동을 할 수 있었다.
kr 커뮤니티를 알게 된 게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팀 파워나 보팅 파워의 개념을 알게 된 게 같은 시기인 건 분명하다. 명성도, 저자와 큐레이터의 보상 개념, 얼마 전까지, 어쩌면 지금도 뜨거울지 모를 셀프 보팅과 담합 보팅 같은 이슈를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다.
셀프 보팅 이슈에서 나는 아직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못했다. 투자한 만큼 더 가져가는 게 잘못이냐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나는 다만 거기에 보태 '고래가 오늘 숨 쉰 이야기'만큼 가치 있는 뉴비의 글도 있으며, 그들도 그만큼 보상 받을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길 바랄 뿐이다. 고래가 그동안 쌓은 명성, 기여도, 관계, 투자한 돈으로 빚어낸 몇 십 불 짜리 '오늘 숨 쉰 이야기'를 따라잡기 위해 단 한 편에 전부를 녹여내어 쓴 뉴비의 글도 분명히 있다. 저는 아닙니다 양질의 컨텐츠로 고래의 숨 쉰 글과 상응하는 가치를 만들어낸 그런 글 말이다.
예를 들면 @kyslamte 소울메이트님의 글이 그러하다. 다행히 소울메이트님의 글은 많은 분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 주었지만, 분명 어딘가엔 kr-newbie 태그가 뭔지도 몰라 읽히지도 못하고 사장된 뉴비의 글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나 같은 뉴비들만 다녀갔던지.
아주 거창하고 대단한 글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최소한 고래가 오늘 숨 쉰 이야기보다 더 성의 있고 더 유익하고 더 가치 있는 포스팅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그 사람들은 무과금 유저이니 같은 보상을 가져갈 순 없다는 논리는 '노동은 자본보다 가치가 없다'는 지독한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나온다. 스팀잇은 그런 관점을 답습하기 위해 만들어진 걸까?
물론 고래들이 뉴비들에게 거한 보팅을 해 줄 의무는 없다. 하지만 좀 더 긴 관점에서, 스팀잇을 지속적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들려면 양질의 컨텐츠를 제공하는 유저들이 필요하다. 다른 SNS와 달리 이곳은 글에 대한 보상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본주의 사회의 최종 보상 단계인 '돈'으로. 이 사회에서 돈과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는 보상 가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양질의 컨텐츠를 올리는 유저들이 현실에의 지독한 상대적 박탈감과 불공정 게임의 룰을 이곳에서까지 느낀다면 그 활동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그들을 붙잡아둘 수 있는 방법 중 섭섭치 않은 보팅과 댓글만큼 유용한 게 있을까. 그들이 떠나고 아무말 대잔치만 남은 이곳이 자산의 가치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썰이 길어졌다. 원래 이 글은 내가 왜 가지고 있던 비트의 일부를 1,900만 대에 팔아 3,000 대의 스팀을 샀는가에 대한 얘기다. 나는 원래 과금 유저가 아니다. 어지간한 게임은 무과금으로 끝장을 본다. 제작사와 나 혹은 자본주의와 나 사이에서의 파워 게임에서 오기가 발동하는 탓이다. 그런데도 굳이 500 스팀 파워를 충전한 이유는 단순하다. 보팅 파워 조절이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 + 500 스파로 대체 얼마의 보팅이 가능한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때는 업보트 계산기의 존재를 몰랐다 - -;)
그 사이에 스팀이 크게 올라준 덕분에 의도치 않게 이득을 본 셈인데 파워 다운까지 가치가 보존된다면 스팀이 인상된 바람에 언제 추가로 더 넣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스파를 충전하며 스팀잇을 할 생각이다.
나처럼 단순히 호기심에서 왔다가 적극적 취미가 된 사람이 아니라 이곳을 최후의 보후로 여기는 스티미언도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 글쓰기를 업으로 삼거나 삼으려는 분들이 그럴 것으로 짐작한다. 혹자는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 편하게 돈 벌려고 하지 말고 나가서 일하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들이 얼마나 죽을 힘을 다해 이런 곳에 글을 올리는지 잘 안다.
나 역시 아직도 갈 길이 먼 처지지만 운 좋게 전업 작가로 8년을 먹고 살고, 이역만리 땅에서 현지 작가와 협업을 준비하는 정도의 작은 행운은 누리고 있다. 불행히도 그런 행운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잘나서 그런 행운을 얻은 것도 아니고, 그들이 못나서 그런 행운을 못 잡은 것도 아니다. 그건 그저 운 때문이다.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그 운 때문에 좌절해온 그들이 이곳에서까지 낙담한 채 나가지 않았으면 한다.
얼마 안 되는 파워지만 그들을 꾸준히 지원하고 싶다. 그들이 이곳에서 고래가 될 때까지.
부제: kr-pen 활성화를 꾀하며
문학적 글(수필/소설/다큐멘터리 기록 등)에 해당하는 포스팅에 kr-pen 태그를 달아주시면 시간 날 때마다 찾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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