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the writer
이 포스팅 참 영양가 없네.
대체 진짜 글쓰기는 언제 말해 주는 거야?
나는 당장 수려하고 매끄러운 문장으로 독자의 공감을 자아내고 심금을 울리는 글을 쓰고 싶다고!
무천도사를 아시는지?
무천도사는 드래곤볼에 나오는 인물로 손오공과 크리링 등의 스승이다. 등에 메고 다니는 거북이 등껍데기가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한때 지구 최강의 무술가였다. 그는 무술을 배우려고 입문한 오공과 크리링에게 그들이 원하는 무술 대신 노가다를 시킨다. 여기서 노가다는 비유가 아니라 진짜 공사판 막노동을 말한다. 그 외에 수천 개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우유 배달이나 맨손으로 밭 갈기 같은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시킨다. 당연히 오공과 크리링에게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권법을 가르쳐 달라는 오공의 직접적인 요구에 무천도사는 이렇게 일갈한다.
애송이 주제에 건방지구나.
체력도 단련되어 있지 않으면서 어떻게 무술을 익힌다고 그래?
7개월이 지난 뒤 재차 권법을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무천도사는 ‘지금껏 너희들이 해 온 일 속에 이미 다 들어있다. 권법은 이것들의 응용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익힌 기본을 살려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라고 진의를 말해 준다. (참고로 오공과 크리링은 저 훈련을 ‘천하제일무도회’가 열리기 직전까지 8개월 간 매일 했다)
드래곤볼을 보지 않은 분들은 히딩크 감독을 떠올려 보시라. 그는 대표팀을 맡은 후 선수들의 체력 향상에 가장 공을 들였다. 히딩크에게 훈련 받은 선수들은 외국 선수들에게 꿀리지 않는 체력으로 월드컵 이후에도 세계 각지의 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이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감이 오실 것이다. 짧은 기간 동안 나는 여러분의 기초 체력 향상을 위한 방향으로 연재를 꾸려 왔다. 글쓰기에서 기초 체력이 무엇인지는 각자의 의견이 다를 것이나 내 기준에서는 이렇다. 글쓰기가 권법이라면 글쓰기를 위한 집중력, 사고, 습관이 곧 체력이며 기초 자질이다. 패션의 완성이 얼굴이라고 해서 패션을 포기하긴 이르다. 옷걸이를 좋게 만들면 반팔티에 청바지만 입어도 태가 나기 마련이다. 얼굴은 글쓰기로 치면 타고난 재능에 해당한다. 타고난 재능이 없어도 우리는 패셔니스타가 될 수 있다. 좋은 문장이나 형식, 소재는 옷과 장신구에 불과하다. 당장은 그런 거 없어도 된다. 옷이 아무리 좋아도 체형에 안 맞으면 말짱 꽝이다. 자칫하면 패션 테러리스트가 된다. 글쓰기를 위한 몸매를 다지자. SHUT UP AND SQUAT!
오늘은 그간 여러분이 글쓰기를 위한 환경을 찾고, 레퍼런스를 읽고, 머릿속에서 충분히 굴리면서, 일기와 같은 짧은 글을 꾸준히 썼다는 가정 하에 지금쯤 고민하고 있을 그것을 한번 짚어 보려 한다. 바로 소재다.
쓸 게 없다.
포스팅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분들이 제일 많이 하는 얘기가 이것이다. 남들처럼 여행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해외에 살지도 않는다. 영화나 책 리뷰를 쓰자니 머리가 아프다. 수필을 쓰자니 글빨에서 밀린다. 그렇다고 직업이 특별하지도 않다. 평범한 일상을 보낼 뿐이다. 아, 쓸 게 없다.
미안하지만 쓸 게 없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못 쓰는 거다. 상처 받지 마시라. 못 쓴다는 표현은 글솜씨가 부족하단 게 아니라 가져다 쓰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미 여러분에게는 쓸거리가 차고 넘친다. 단지 그게 재료임을 눈앞에 두고도 모를 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이 가장 좋은 재료다. 제일 만만한 게 일기라고 누차 말해 온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kr에서 제일 잘 팔리는 컨텐츠 3대장 중 하나다. (나머지는 코인과 스팀잇 얘기)
누가 내 일상을 궁금해 하겠어?
궁금해 합니다.
일기가 3대장 중 하나가 된 이유는 타인에 대한 인간의 관음증적 호기심 덕분이다. 관음증의 사전적 정의는 타인의 알몸이나 성교 장면을 훔쳐보며 성적 만족을 얻는 증세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세간에서 통하는 좀 더 넓은 의미, 즉 타인의 삶을 엿보고 싶은 욕구를 말한다. SNS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욕구가 깔려 있다.
일기는 그날 있었던 일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여러분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문득 든 생각을 기록할 수도 있다. 그게 수필이다. 그래도 해외 여행 같은 특별한 게 유리하지 않느냐고? 아니다. 어디 화성 탐험 같은 굉장한 게 아닌 이상 오히려 식상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 거주 얘기도 마찬가지다. 해외 거주 스티미언의 글이 인기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스프링필드@springfield님은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보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쓴 번호 일기가 더 인기다. 그렇다. 이분이 바로 그 유명한 번호 일기의 창시자다. 정작 일기는 크게 특별한 얘기가 없다. 방 청소를 하려 했는데 실패했고, 그래서 아르헨티나가 그립다- 이 정도다.
아, 그래도 해외 생활과 귀국 후 생활의 차이에서 나오는 애환이 감동 포인트 아니냐고 하실 수 있겠다.
그럼 조선생@tutorcho님의 일기를 보자. 최근에는 학원(직장) 얘기-오늘 금연은 성공인가 실패인가-가즈앗! 원패턴이다. 식상하지 않느냐고? 천만에. 많은 분이 찾는 인기 컨텐츠다. 이 사람의 근황이 궁금하다는 이유에서 아닐까.
직장/학교를 다니는 여러분은 이런 점에서 나보다 유리하다. 근래 있었던 일에 대해서만큼은 방구석 폐인인 나야말로 쓸 게 없다. 내가 지금껏 올린 글에서 프랑스 얘기는 여행기 딱 한 포스팅 밖에 없다. 그에 비해 여러분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 상사나 후배와의 갈등, 피로, 스트레스, 성취, 보람, 목표, 계획, 오늘 먹은 점심, 출퇴근 길에 본 풍경… 그래도 나보다는 이벤트가 많지 않을까.
일기는 신상을 드러내서 싫은데.
일기든 뭐든 글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일이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는 명제는 잠깐 넣어두고 자신의 생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자. 신상을 드러내지 않고도 말할 거리는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사회 이슈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다. 미투 운동이나 남북관계, 어뷰징 문제 같은 이슈는 늘 우리 주변에 있다. 논리 정연함이 요구 되어 어렵다거나 논쟁적인 글은 쓰기 싫다는 분들은 ‘생각’이라는 단어를 ‘감상’으로 바꿔 보자. 대상에 대한 취향과 감상을 밝히기는 것만으로도 글쓰기가 된다. 잘 벼린 칼@afinesword님의 술과 음악 포스팅이 좋은 예다.
이것만은 피하자.
가치 있는 글을 지향한다면 아무 히스토리 없이 ‘아.. 오늘 힘드네요…. 마음도 몸도 몹시 지칩니다… 내일은 밝은 날이 오기를….’ 이렇게 감정만 늘어놓는 건 지양하자. 쓰는 사람도 괴롭겠지만 읽는 사람도 괴롭다. 최소한 이유는 밝혀 줘야 공감할 여지가 생긴다. 기껏 블로그 찾아와 시간을 들여 글 읽는 수고를 해 준 분들을 농락하는 것과 다름없다.
줄거리는 공식 배포된 자료를 보는 게 더 낫다. 구글에 치면 그냥 다 나온다. 디테일에 관한 해석은 위키를 보는 게 더 유익하다. 그러니 대충 줄거리만 요약하고 끝내지 말고 충분히 생각한 뒤 시간을 들여서 작성하자. 어떤 현상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굳이 리뷰를 보는 건 다른 사람은 해당 작품을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안에 줄거리 외 다른 정보를 담을 수도 있다. 영화에 숨겨진 코드를 해석하거나 제작 비화를 소개할 수도 있다. 그런 정보만 전달할 목적이 아니라면 작성자의 감상은 필수다.
브리@bree1042님의 독후감은 양쪽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참고로 이분도 해외 거주자이나 영어 강의와 독후감이 주 컨텐츠다) 나는 정보는 배제하고 감상만 남기는 스타일이다. (동물 농장 | 어린 왕자 | 소크라테스의 변명)
제품 리뷰도 마찬가지다. 상세 스펙은 제조사가 배포한 자료만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건 실제 사용기다. 여타 블로그들의 사용기는 대부분 개봉기에 지나지 않는다. 일주일, 한 달 후에 관련 후기가 올라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방문자들이 거기서 무얼 얻을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긁어온 정보를 취합해서 올리는 건 검색으로 방문자 유입을 유도하는 기존의 블로그 마케팅 방식이다.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블로그를 꾸리는 데는 바람직하지 않다. 글쓰기를 목표로 하는 여러분과는 더더욱 맞지 않는 포스팅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어딜 가든 전문가가 넘치는 온라인에서 까딱 잘못하다간 개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거다. 잘 모르는 분야는 그냥 쓰질 마시라. 자기가 직접 겪은 경험담이라면 모를까. 게다가 알맹이 없는 정보는 네이버 블로그만으로도 지겹게 많다.
이런 종류의 글은 독자가 자기보다 멍청할 거라 생각하는 근자감에서 비롯된다. 친절한 이웃들이 한두 번 모른 척 받아주니 속아 넘어간 줄 안다. 실제가 아닌 억지로 쥐어 짜낸 이야기는 티가 난다. 관심병 환자가 아니라면 그런 글 꾸역꾸역 지어낼 정성으로 그냥 자기 얘기를 써라.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자. 일기든 리뷰든 쓰는 게 힘든 이유는 글솜씨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이웃의 리뷰에서 평론가처럼 해박한 지식으로 작품에 숨겨진 코드를 까발려 주기를 기대하진 않는다. 그냥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된다. 그걸 남들이 알아듣기 좋게 다듬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걸 못하는 이유는 글빨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이 아직 부족한 탓이다. 그게 아니면 귀찮아서 혹은 시간 부족이다. 하루 종일 집에 처박혀 컴퓨터 앞에 있는 게 아닌 이상 대부분은 포스팅 준비에 며칠이 걸려야 정상이다. 1일 1포의 압박 때문에 아까운 총알을 낭비하지 마시라. 여러분이 작성하는 포스팅으로 여러분의 캐릭터가 구축되고, 그게 곧 네임 밸류로 이어진다.
영감은 어디서 오는가. 마을회관? 간혹 인터뷰를 통해 영감이 어디서 오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나는 이 중 최소 절반은 인터뷰를 위해 그냥 한 얘기라고 본다. 왜냐하면 사실대로 말하면 이해를 못하거나 매체가 원하는 그림이 안 나오니까. 절반의 진짜 대답은 이렇다.
오긴 어디서 와… 그냥 생각나는 거지.
저들은 어떻게 쓸지를 고민하지 무엇을 쓸지 고민하지 않는다. 내 손에 들어오면 아무거나 소재가 된다!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정말로 머릿속이 이미 불현듯 떠오른 것들로 차고 넘쳐서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경우다. 그게 저들이 작가가 된 이유다.
물론 저들의 무의식을 파헤쳐 보면 영감이 생성되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담컨대 저들의 소스를 그대로 입력해도 여러분은 다른 결과를 출력하게 된다. 소스를 처리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유전자와 인생 여정이 만든 현재의 사고 체계가 각각 다른데 저들의 영감이 어디서 오는지가 왜 중요한가.
그러니 이들에게 영감이 어디서 오느냐고 묻는 건 애초에 건질 게 없는 질문이다. 동경하는 작가가 인터뷰에서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에 속지 마시라. 남의 머릿속에서 건지려 하지 말고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그냥 가게 놔두지 말고 붙잡아서 다시 살펴보라. 소재도 얻고 자아 성찰도 되니 일석이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