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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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oya





  “당신은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몰라.”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왜 콘택트에 보면 그런 대사가 나오잖아요. 이 광활한 우주에 우리만 존재한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다.”

  그 유명한 대사를 마무리 지으며 나는 조건 반사로 아버지를 떠올렸다.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우리는 그 영화를 함께 보지 못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그 영화가 존재하지 않았던 탓이다. 대신 우리는 원작 소설을 함께 읽었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함께 봤다. 특히 코스모스는 토요명화를 시청할 때처럼 거실에 모여 팝콘을 먹으며 봤을 정도로 우리 형제와 아버지는 그 시리즈를 아꼈다. 아버지가 무척 좋아하셨을 그 영화를 실제로 보게 된 건 지미가 대학에 가서 고향을 떠났을 때다. 그때까지 나는 밤하늘과 마찬가지로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그 영화를 피했던 것 같다. 우연히 그 영화를 본 건 수지 큐의 집에서 뒹굴뒹굴할 때였다. 좋은 작품임은 부정하지 않겠다. 다만 아버지와 함께 보지 못한 게 아쉬울 뿐. 그런데 그 대사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뜻밖이었다.

  “난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어떤 의미에서?”
  “모든 존재에 의미가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존재 자체가 전부일 수도 있잖아요. 우주에 우리만 있다고 해서 나머지 공간이 쓸데없다는 건 너무 유물론적인 결론이에요.”
  “단지 그것만을 위해서라면 우주가 너무 쓸데없이 넓다는 얘기죠. 지나칠 정도로.”
  “내 말을 이해 못 하는군요. 저 하늘을 봐요. 저 자체로 아름답잖아요. 그냥 저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하면 안 되나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그것만으로도 존재의 이유가 충분하다구요.”
  “안 될 건 없지. 그런데 내가 우주의 창조자라면 약간 더 작게 만들었을 거예요. 단지 인간에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주기 위해서라면 말이죠.”
  “이거 보세요, 미스터 스팍. 과학의 냉소주의 시대는 지났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이 잃어버린 감성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내가 감성을 잃었다구요?”
  “응. 당신은 엄청 건조한 남자라구요. 몰랐어요?”
  “모를 수밖에요. 사실이 아니니까.”

  일부러 낭만주의자가 될 생각도 없고 오히려 적절한 마초를 지향하는 나지만 그런 평가를 들으니 부정하고 싶었다. 그 평가에 그녀가 감성적인 남자를 선호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나는 이미 그녀의 인력에 끌려가는 힘없는 소행성에 불과했다. 거기에 연인과 함께 있을 때 발동하는 내 특유의 가벼움이 더해진다면 그녀가 원하는 수준의 낭만주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욕구와 남자를 남자답게 만드는 고민들이 마지노선에서 버티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아직은 좀 더 냉철함을 유지하라고 동시에 요구했다.

  정작 강력하게 반론하고 싶었던 건 그녀가 제시한 우주의 의미였다. 우주의 역사에서 찰나에 불과한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우주라니. 물론 그녀의 말뜻은 우주를 바라보는 인간의 입장에서 그 정도 의미만 두어도 무방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그녀도 존재 자체가 목적일지도 모르는 대상에 애써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게 유물론적이라고 비판하는 입장이니까. 나 역시 모든 것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만물은 이유가 있기에 존재한다는, 창조자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발상은 지구의 역사만 되짚어 봐도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인간을 위해 공룡이 죽어 석유가 되었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석유의 성질을 이용하는 방법을 인간이 만들었을 뿐이다. 파리와 모기가 기생충과 균을 위해 매개체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들 존재를 기생충과 균이 이용하는 것뿐이다. 그 모두는 그들이 없더라도 다른 존재로 대체할 수 있고, 아니면 아예 일어나지 않아도 무방한 일이다. 전기와 반도체를 활용한 전자시대를 맞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증기기관과 톱니바퀴로 문명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갈 수 있는 수많은 갈림길 중 하나일 뿐이다.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아예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공룡이 멸종한 건 인간의 존재를 위해 그리고 훗날 석유로써 인간에게 활용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일어난 일일 뿐이다. 인간이 태어난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우연한 진화의 산물임을 부정하고 싶은 바람은 이해하지만 모든 증거는 그에 대해 불리하게 작용한다. 분명한 이유를 달고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믿음, 인간에게 유의미하게 쓰이기 위해 지금의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믿음은 사후 세계에 대한 그것과 비슷하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일 뿐 증거는 아니라는 얘기다. 인간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구는, 더 나아가 우주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인본주의자들은 그에 대한 쓸만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내가 부정하고 싶은 건 반대로 그녀의 말처럼 아무런 의미 부여를 할 필요 없는 우주였다. 어쩐지 우주만큼은 그렇게 넘겨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무런 목적 없이 존재하는 우주라니. 차라리 그녀 말대로 인간을 위한 관상용일지언정 임무가 있는 게 낫다. 헤아릴 수 없는 공간을 아무 생각 없이 만든 작자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마저도 정신을 놓아 버릴 것 같으니까.

  그런 문제를 그녀에게 따지진 않았다. 대신 우리는 네모에서 저녁을 먹었다. 무의미한 유한한 삶을 그나마 가치 있게 만드는 건 순간마다 느끼는 희로애락에 있지 않은가. 우리는 누구나 그런 순간을 가능한한 기쁨과 행복으로 채우고 싶어 한다. 나는 그녀와 있는 시간만큼은 나를 짓누르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오로지 그녀에게만 집중하고 싶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살갗을 뚫고 들어와 세포 하나하나에 번지는 빛과 열기에 정신이 아늑해지는 걸 느껴본 적 있는가? 그때 우리는 지금껏 보지 못한 밝은 우주와 마주할 수 있다.

  “내가 예언 하나 할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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