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zoya
거울처럼 고요한 타호 호수 위로 쏟아질 듯한 별들을 보며 아버지는 이렇게 물었다.
“우주는 왜 끝없이 넓을까?”
쌍둥이 중 하나가 대답했다.
“별이 엄청나게 많아서요.”
아버지는 따스한 눈길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또 물었다.
“그럼 별은 왜 한없이 많을까?”
쌍둥이들은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모닥불에 환하게 빛나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러자 아버지는 더없이 인자한, 그러나 어딘가 공허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야.”
오래도록 잊고 있던 그때의 기억이 슬픈 잔상으로만 남은 간밤의 꿈이었다는 걸 나는 문득 깨달았다. 밤마다 도시를 침잠시키는 안개처럼 내게 사무친 정체 모를 감정이 고독이라는 사실 또한 깨닫고 말았다. 센터로 가는 길에서였다.
마침내 그녀를 만났고 전도유망한 첫 데이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추락 중이었다. 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금빛 찬란한 도시의 풍경이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었지 이미 우울한 상태였다. 그녀를 잃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과 두려움이 창밖 풍경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반작용으로 몸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전에는 다소 귀찮게 느꼈던 흥청망청한 파티의 소란스러움, 사람들의 웃음과 현란한 음악이 뒤섞인 왁자지껄한 열기를 혈관에 채우고 싶어졌다. 술이든 약이든 아니면 둘 다든 그 쾌락에 중추신경을 기분 좋게 달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날 밤으로부터 나흘 만이었다.
“해가 서쪽에서 떴나?”
지미가 사무실 창밖을 보며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내가 제시간에 나타난 걸 두고 한 말이었다.
“닥쳐.”
“클레어 때문이지?”
“신경 꺼.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 순간 당황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비친 나는 본심을 들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에 불과했다.
“데려가서 마음껏 다뤄요. 이 녀석은 악마의 볼모니까.”
지미가 예의 그 매력적인 미소를 발산하며 말했다. 그 얼굴에서 언뜻 복잡미묘한 감정이 읽혔다. 그건 본심을 가리기 위한 위장이었다. 사무실을 나서는 그녀를 좇는 지미의 눈빛에 얹힌 씁쓸함이 모든 걸 말해 줬다. 분명 녀석도 그녀에게 호감이 있는 것이다.
“악마의 볼모라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녀가 물었다.
“몰랐어요? 저 녀석의 정체는 메피스토예요. 아니면 닥터 프랑켄슈타인이거나, 어쩌면 닥터 모로일지도.”
내 친절한 설명에도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부르는 건데요?”
순간 나는 그녀 또한 지미와 같은 분야에 종사하고 있음을 깨닫고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학계 전반을 공격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순전히 지미와 나 사이의 문제니까.”
검사실 앞까지 걸어가는 동안 우리의 대화는 끊겼다. 나는 그 상황이 불편했다. 분명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리라. 어쩌면 동경의 대상인 지미를 그런 취급하는 게 그녀를 불쾌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검사실 문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뜻밖의 말을 꺼내 나를 놀라게 했다.
“왜 전화 안 했어요?”
머릿속에 번쩍하고 전구가 켜졌다. 여자의 마음이란! 나는 바보처럼 그녀를 의심한 걸 마음속으로 백배사죄하며 더듬거렸다.
“그게…… 알다시피 전화가 없어서요.”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깨어나면 축축하게 젖은 침대보 위에서 심한 갈증과 두통을 느꼈다. 자는 동안 머릿속에 펼쳐졌던 환영은 늘 그렇듯 의미를 연결할 수 없는 잔상만 남겼다. 그중 분명한 건 수지 큐의 해골 큐피드가 나를 괴롭혔다는 사실이다. 꿈속에서 내내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증거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수지 큐에 대해 죄책감이 있는 걸까? 그래도 차라리 죄책감이 나으리라. 남은 게 미련이라면 나는 지금 사건의 지평선 위를 달리고 있을 테니. 그런 복잡한 감정으로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녀의 강렬한 빛이 음습하게 스민 기운을 바싹 날려 버리고, 그 강한 인력으로 끝 모를 심연으로 추락하는 나를 건져내리라는 건 자명했다. 그건 운명처럼 정해진 일이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나는 최상의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야 했다. 내가 가진 잠재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정점만이 ‘그녀와 마주하는 나’가 되어야 했다.
“잭.”
그녀는 놀랍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당신이 구식을 좋아한다는 건 알지만…….”
뒤를 쉽게 잇지 못하던 그녀는 책망으로 말을 마쳤다.
“그럼 전보라도 보냈어야죠.”
그게 나를 기분 좋게 했다. 봄날의 햇볕을 쬐는 죄수처럼 들떠서 모든 검사를 일사천리로 받았다. 마지막으로 MRI 기계 안에 누워 있을 때 스피커를 통해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서…… 언제가 좋아요?”
“뭐가요?”
“과학 아카데미요.”
“데이트에서까지 직업적 소양을 연결하는 건 좋은 자세죠.”
“계획이 마음에 안 드는 거군요.”
그녀는 다소 풀죽은 소리로 반응했다.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 거기는커녕 골든 게이트 공원조차 가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그곳에서의 데이트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수지 큐와 나는 그런 취미가 없었다. 수지 큐는 유행과 유명세에 민감해서 공원에서의 한가한 산책이나 박물관 따위는 노인네들이나 할 법한 일이라고 일찌감치 단정 지었고, 나 역시 오랫동안 쓰지 못한 몸을 좀 더 활동적인 활동에 투자하고 싶었기에 굳이 그곳에 발을 딛지 않아도 전혀 유감스러울 게 없었던 것이다.
“거기 천문관이 유명하잖아요.”
그녀는 내가 미끼를 물 때까지 끈질기게 낚싯줄을 드리웠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맞장구를 쳤다.
“모리슨 천문관 말이군요.”
너무 버티다가 그녀의 인내심이 뚝 끊어지기라도 하면 두 번째 데이트는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맞아요. 역시 알고 있네요.”
그녀는 반색하며 마침내 잡은 기회를 헛되이 날리지 않기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
“천문관은 밤에 가야 제맛이잖아요. 그렇죠?”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는 점에 감사하며 나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바로 그걸 위해 밤이 있는 거죠. 그래서 언제 쉰다구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