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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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oya





  “이태리 음식 좋아해요? 피자나 파스타 말고.”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괜찮은 레스토랑을 검색하는 데 시간을 쏟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들이 좋다고 하는 레스토랑들을. 파커 씨는 첫 데이트에 모르는 곳을 가는 건 위험하다고 충고했다.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가본 곳들은 모두 배제되어야 했다. 수지 큐와의 추억이 있는 장소로 그녀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건 모두에게 예의가 아니니까. 나는 차라리 파커 씨의 추천을 받기로 했다.
  “난 구식이라 요즘 사람들이 좋아할 곳은 모르는데.”
  파커 씨가 두툼한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저도 구식이 좋아요. 그리고 아마 그녀도 그럴걸요.”

  그렇게 추천받은 곳이 유니온 스퀘어에서 북쪽으로 두어 블록에 있는 네모NEMO였다. 그곳은 블록 모퉁이에 위치한 건물의 모퉁이에 자리 잡은 아늑한 레스토랑이었다. 아담하고 소박한 데다 탁자마다 촛불을 밝혀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날씨가 좋았기에 우리는 아코디언 도어를 활짝 열어 둔 쪽에 앉았다. 예상대로 그녀 역시 그런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 했다.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여긴 어떻게 알았어요? 혹시 예전 데이트 장소?”
  나비넥타이에 조끼를 갖춰 입은 웨이터가 때맞춰 메뉴를 들고 왔다.
  “파커 씨의 소개로 왔는데요. 오늘의 추천 메뉴는 뭐죠?”
  그렇게 돌려 말해 그녀의 추측을 부정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눈앞의 그녀를 실감하는 데 집중했다. 그녀는 지지 않으려는 듯 내 시선을 맞받다가 결국 부끄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살짝 떨궜다.

  “그래서…… 아까 그분은 여자친구 맞죠?”
  역시 그녀는 알고 있었다. 여자들은 이런 종류의 일에는 어떻게든 놀라운 감각을 발휘하니까.
  “오케이, 그러니까 초면에 예의보다는 실리를 차리자 이거죠?”
  나는 너스레를 떨며 팔을 걷어붙였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수지 큐를 포함한 센터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길목이라 약간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도 뭐 수지 큐는 아까 퇴근한 모양이니 가장 큰 위험은 피한 셈이지만. 그녀는 뭐가 재미있는지 싱글거렸다.

  “미안해요. 실례인 건 아는데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분 표정 정말 안 좋았거든요.”
  말과는 달리 그다지 미안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순수한 호기심, 그녀의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모든 계산을 포기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몇 달 전에 헤어졌죠. 아, 오해하진 마세요. 오늘은 안부를 물으러 온 것뿐이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화나게 했어요?”
  “그건…….”

  잠깐 사실을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 이유를 명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수지 큐는 내가 그녀에게 끌렸다는 것에 화가 난 걸까? 아니면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화가 난 걸까.
  “제가 남자이기 때문이겠죠.”
  나는 그렇게 둘러댔다. 적절한 순간에 웨이터가 음료를 들고 나타나서 나를 도왔다. 짧은 시간이나마 숨통이 트이자 한순간 긴장했던 마음이 다시 여유를 찾아갔다. 웨이터가 떠나자 그녀가 말했다.

  “근데 역시 기억을 못 하네요.”
  “뭘요?”
  “우리 구면이에요.”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예전에 느낀 데자뷔의 메아리가 한참 만에 되돌아와 머릿속에 울렸다. 나는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망상으로 분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헌팅턴 비치…….”
  “기억하네요?”
  태양을 등지고 환한 햇무리를 이루던 그녀…….
  “당신이군요. 당신이 나를 구했던 거군요.”
  “네, 제가 바로 당신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내 머릿속에는 운명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떠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단숨에 우주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하필 이런 몰골일 때.

  “진짜 다시 만날 줄 알았다면 관리 좀 할 걸. 이런 몰골은…… 할 말이 없네요.”
  그녀가 이유를 알겠다는 듯 끄덕이는 바람에 나는 황급히 덧붙였다.
  “실연의 후유증 같은 거 아니에요. 그냥 좀…… 과음했어요.”
  “그러니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괜찮아요. 그게 뭐 어때서요. 그럴 수도 있죠.”
  나는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지 큐에 관한 얘기를 빨리 끝내야 다른 주제로 넘어갈 수 있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건 처음이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몰랐죠.”
  “많이 사랑했죠?”

  선뜻 답할 수 없는 물음이었다. 많이 사랑했다는 건 상대적인 걸까 절대적인 걸까. 한때 수지 큐와 완벽하게 하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호르몬이 이성을 교란시킨 것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와 상관없이 내가 수지 큐를 사랑했던 건 사실이다. 상대적이든 절대적이든 많이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에게 있어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했던 게 흠이 되더라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주 작은 사건에 불과하지만 그건 우주 어딘가에서 명백하게 일어났던 일이다. 그 사실을 못 박기 위해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랬죠.”

  그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아무렇지 않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데 어쩌다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해서요.”
  먼저와는 다른 모순적인 대답에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사랑한다’라는 말에 관한 내 생각을 말했다. 수지 큐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열띤 반론을 펼치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기분이나 생각을 정의하기 위해 말이 태어난 거라구요. 생각해 봐요. 어떤 심정을 묘사하려는데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을 때 없었어요? 복잡하고 미묘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그런 순간이 있잖아요. 그건 말이죠, 표현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런 감정을 정의할 말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심지어 촘스키와 핑커 같은 학자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까지 빌려와 내 말문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정작 내 입을 틀어막은 건 석학들의 권위가 아니라 정말 당돌하기 그지없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녀의 질문 때문이었다.

  “그럼 누굴 사귀든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는 거네요?”
  “이건 상대가 누구냐와는 상관없는 문제니까요.”
  “좋아요. 이건 만약인데요.”
  그녀는 그렇게 운을 떼고 자기가 생각해도 우습고 민망하다는 걸 얼굴 전체로 표현했다.
  “정말 만약이에요. 만약에 그게 나라도 결국 말해 주지 않을 건가요?”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담긴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모든 영양분이 뇌를 향해 몰려들었다. 단순한 호기심인가? 어떻게든 내 생각을 바꾸려는 시도인가? 아니면 정말로…….

  “그 말을 안 하면 우린 결국 헤어지게 될까요?”
  “이봐요.”
  그녀는 예상치 못한 반격에 도리질 치며 뒤로 물러났다.
  “그래요, 졌어요. 이제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건가요? 공주병이라고?”
  “아니까 다행이네요. 병원에 데려가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구요. 전화만 있었다면 벌써 911을 눌렀을 거예요.”
  “놓고 왔어요?”
  “그럴 리가요. 없는 걸 어떻게 놓고 오겠어요.”
  “없어요? 왜요?”
  “사랑을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다들 쥐똥만한 화면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게 꼴 보기 싫더라구요. 같은 부류가 되고 싶지 않아요.”
  “전 여자친구가 스마트폰 중독자였나 봐요?”

  수지 큐가 SNS를 꽤 열심히 관리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굳이 거기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대화 끝에, 언제 어디서나 소통할 수 있는 기기가 오히려 진짜 소통의 부재를 일으켰다는 진부한 논리에 그녀와 내가 함께 공감했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그녀는 문득 생각난 질문을 던졌다.
  “밤에 보고 싶거나 목소리라도 듣고 싶으면 어떡해요?”
  “당신이 나를요?”
  “아, 정말 못 당하겠네요.”

  한차례 함께 웃은 다음 내가 말했다.
  “정말 보고 싶다면 굳이 전화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분명 이미 같이 있을 테니까.”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내 말은 어쨌든 미리 알 거란 얘기였어요. 보고 싶어질지 아닐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저는 알아요.”







-계속